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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장애인공동체 기획시리즈



황옥경(회원)

 

 나에게 시한부 인생의 선고가 내려졌을 때, 내 신체의 일부가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했을 때,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질병으로 인해 신체장애가 왔을 때, 나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절규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이 나를 덮쳤다. 소리 한번 질러 보지도 못하고 중풍(Stroke)이라는 병마에 60을 갓 넘어 내 몸은 철저히 망가지고 말았다.

 

 흔히 뇌졸중은 70~80세 노인들에게 일어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내 경우를 보더라도 요즈음엔 나이에 상관없이 찾아오는 질병이 되었다. 지나간 일에 대하여 ‘만약’이란 가정은 성립될 수 없다. 그런데도 떨쳐 버릴 수 없는 후회가 크다. 부질없는 생각인 줄 알면서도 건강관리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 무리하게 살아왔던 지난 생활들에 대한 자책감에서 벗어나기가 참으로 어렵다.

 

 캐나다 이민 후 30여 년간 남편과 함께 줄곧 가게를 운영했다. 때로는 강도와 맞닥뜨려 몸싸움까지도 했다. 살기 위해 악착같이 싼 물건을 사들여 가게 진열대에 채워 놓았다. 죽고싶을 만큼 힘들었던 순간들도 많았다.

 

 우리는 열심히 뛰었다. 전직 교사였던 남편은 주로 가게 운영에 전력했고 난 또순이처럼 물건 사들이는 데 힘을 쏟아부었다. 약 먹을 시간이 없어 거르는 때가 비일비재했고, 죽고 싶어도 죽을 시간이 없어 못하겠단 말까지 할 정도였던 우리 부부다. 가족들과 오손도손 식탁에 둘러앉아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간 무엇을 위한 내달음이었던가. 나는 평소 건강에 대하여 더할 수 없이 자신했었다. 꿈에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게손님들이나 이웃에선 크리스마스 준비에 모두 들떠 있었고. 우리는 크리스마스 특수를 누리기에 정신없이 뛰었던 2008년 나는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었던 그날 이후 6개월간의 병원 생활과 재활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온 내 모습은 더는 내가 아니었다. 중증 장애인으로 남은 평생을 살아가야 할 운명이 되었다. 이렇게 허망할 수가 있을까?

 

 운영해왔던 가게는 처분도 못하고 열쇠를 던져 버린 후 파산선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되어 고생길이 훤히 눈앞에 보이는데도 남편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 했다. 그러나 나를 방문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두렵고 무서웠다. 언어 장애까지 겹치다 보니 복받치는 서러움을 참기 어려웠다.

 

 살아 있다는 것이 저주스러울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세상 어느 곳, 그 누구라도 나를 이해해주고 위로해 줄 곳은 없을 것만 같았다. 이런 절망에서 헤매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성인장애인공동체를 소개해주었다. 그때가 내가 쓰러진 지 1년 쯤 되었을 때이다.

 

 남편은 나를 데리고 실낱같은 희망으로 장애인공동체의 문을 두드렸다. 모두 친절히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외부와 접촉까지 꺼렸던 나였으나 여러 모양의 장애우들과 가족을 만나고 보니 위로가 되었다. 우리말로 진행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따뜻한 찬을 함께 나누었다. 자원봉사자들의 보살핌으로 인해 서럽고 억울했던 마음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직 내 손으로 밥을 먹지 못한다. 남편이 먹여주어 그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장애인공동체 가족으로 합류하지 아니했더라면 우리 부부의 삶의 질은 아직도 바닥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박정애 중의사님의 정성 어린 침술과 김성애 물리치료사의 정성 어린 재활치료는 내가 발에 힘을 주고 일어설 수 있게 해주었다.

 

 웃음을 되찾을 수 있게 해주었고 어눌하지만 분명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대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된 것은 남편의 극진한 사랑과 공동체 가족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보살핌 덕분이었다.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이 부끄럽거나 흉이 될 수 없다는 자각은 내가 당당하게 살 힘이 되어 주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아직도 음지에서 홀로 고민하는 불편한 분들이 있다면 혼자서 끙끙거리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라 말해 주고 싶다.

 

 나같이 중도장애인이 되어 삶의 질이 바닥까지 내려왔다가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함께 걸어가고 있는 친구들이 토론토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장애인공동체 식구로 함께 걸어온 세월도 어느덧 10여 년이 훨씬 넘는다. 매주 금요일마다 열리는 공동체 모임은 어느덧 내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본 원고는 필자의 부군 되시는 변경용님께서, 언어 및 신체장애로 직접 원고를 쓸 수 없는 아내를 위해 대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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