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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2000
흔적을 찾아서(69)-에베소 교회가 받은 편지
bs2000

 

대 도시, 에베소에 있던 교회에게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하신 말씀은 바로 에베소를 떠나는 우리에게 주시는, 2000년 전에 쓰여 이제야 배달된 편지를 읽는 것만 같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3년 가까이(행 20:31) 머물면서 눈물어린 목회를 했던 에베소 교회는 다른 초대 교회들보다 조금 더 순수했던 교회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아시아 7 교회로 보내는 편지 중 첫 번째인 요한계시록 2장에서는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 “모든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잘 알고 있으며,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은 것과 거짓 사도를 드러낸 것과 주의 이름을 위해 참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잘 알고,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 것”을 칭찬하고 있으면서도 “너의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했습니다. 무엇이 처음 사랑이었을까요?

이즈음에서 초대 교회의 생성과정을 다시 한번 상고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대로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오시었지만, 유대인들은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로 받아들이지를 않았습니다.

33년의 삶 중에서 3년을 공생애에 바치시며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하늘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나라를 설명하시며, 그 나라에 이르기 위하여 우리들에게 하여야 할 것들을 가르치신 후, 예언대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고, 그리고 부활하신 후 다시 승천하시고, 한 분이신 예수님이 온 세상에 나타날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성령으로 다시 오신 일”이었습니다.

하늘나라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사람들에게 하늘나라를 설명하시려니 예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비유로 설득하는 일뿐이었을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직까지 하늘나라에 갔다가 돌아온 사람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기에,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해야 할 일들을, 우리에게 주신 “주 기도문” 속에 함축시켜 놓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결과를 위해서, 사도들을 통해 병을 고치는 은사를 더해 주시고, 또 온갖 박해를 받으면서도 두려움 없이 순교할 수 있는 확신의 믿음을 주시었겠지요.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보았고, 또 오순절 성령강림을 체험한 많은 사람들이 각지로 돌아간 후, 여러 곳에서 이러한 예수님의 이야기가 퍼지게 되자 이를 믿고 따르려는 사람들로 “자생 교회”의 씨앗들이 생겨났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자생 교회”를 인도하며 키워줄 사람은 고작 12명의 제자들뿐인데, 그네들로는 인간적으로 역부족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의 결정으로 7 사람의 집사들을 뽑아 일들을 분담시키고 사도들은 기도에 전념할 수가 있었지요. 그러나 이 일이 문제의 씨앗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구전으로만 전해지고 있을 때였고, “자생 교회”들에겐 유대인들의 핍박이 있을 뿐, 로마 정부로부터 규제는 없었습니다.

이럴 즈음 나타난 사람이 나중에 사도 바울이 된 사울이었습니다. 그의 회심과 그 후의 사역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고 계시겠기에 재론은 안 하겠으나 “자생 교회”들이, 그리고 그가 선교함으로 시작된 교회들이 “초대 교회”의 형태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든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여러 지역에서 생겨나갈 때인 AD 60년경부터 로마의 박해가 시작되어 오자, 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순교를 당하게 되고, “초대 교회”들은 더 멀리 소아시아로 피난을 가며 지하에 숨어들게 되었지요.

요한 계시록 2:6 에서는 에베소 교회에게, 그리고 2 :15에서는 버가모 교회에게 질타하시며, 성경에 2번 나오는 “니골라 당”의 시작은, 사도행전 6장에서 12사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다며 일곱 집사를 선출”할 때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로부터 였습니다.

그들 중 스데반 같이 순교한 사람도 있었고, 빌립처럼 복음 사역에 큰 업적을 남긴 이도 있었지만, 당시 아직 정립되지 않았던 “초대 교회”에 니골라가 새로운 교리를 내세우며 그 교리를 따르는 무리들이 생기게 되자 그들을 "니골라당"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성경구절을 자세히 비교하여 살펴보면, 에베소 교회에서는 단순히 니골라 당의 행위들을 지칭하는데 그쳤으나, 버가모 교회에는 “니골라 당이 발람이 발락을 가르침 같이 교리를 바꾸고 있다”고 질책하였던 것입니다.

아마도 유일하게 남은 제자 요한이 에베소 교회를 돌보고 있었기에 그의 권위와 능력으로 에베소에서는 "니골라당"이 발을 붙이지 못하였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한이 에베소 교회를 돌보고 있었던 1세기 말엽까지 여러 사도들이 기록했다고 추측되는 다른 문서들과 더불어 거짓된 이단들의 문서들 또한 많이 나돌게 되어, 초대 교회에 나도는 외경과 위경이 280개를 넘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도 많은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예수의 이야기들은 모두 이 같은 문서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혼란이 계속되며 지하에 스며들어 원시종교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확산되어 가던 초대 교회들이,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하여 지상으로 나옴과 함께 정치 권력의 비호를 받게 되자, “로마 교회”가 되어 주교들이 각 교회를 다스리게 되자 교회들 간에 분란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로마 주교인 율리오 1세는 동방과 서방 주교들이 함께 참석하는 공의회를 사르디카(현재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개최할 것을 제안합니다. 342년 혹은 343년에 소집된 사르디카 공의회에는 대략 서방에서 90명의 주교가 동방에서는 80명의 주교가 참석합니다마는 공의회는 참석 주교들의 자격 문제로 합의점을 못 찾자 동방 주교들이 불참을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이 회의에서 ‘사도 베드로의 권위’에 의해 로마 감독을 인정하며, 로마 교구를 다른 교구의 상급 법원으로 지정하여 로마 주교좌의 우월성을 합법화시켜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로마 주교좌를 놓고 교회들 간에 치열한 쟁탈전이 이어 오던 중 366년 9월 24일, 로마 주교좌의 리베리오가 선종하자, 로마 교회는 두 파벌로 분열되어 귀족층의 지지를 받는 다마수스와, 부제들과 평신도의 지지를 받는 우르시키누스 사이에 피나는 투쟁을 벌여 우르시키누스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추방하고, 378년에 열린 시노드에서 다마수스를 다마수스1세 교황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366년~384년재임). (다른 일설에는 다마수스에 이어 직위를 물려받은 38대 시리키우스(384~399년) 교황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이때부터 베드로로부터 시작되는 모든 교부들에게 교황 칭호를 붙여주어 현재 교황 프란치스코는 제 266대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로마 교회에서 “가톨릭교회(The katholike ekklesia)”라는 용어는 서기 110년경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가 스미르나 교회 신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런 와중에도 교회 대표들이 모여 363년경부터 정경적인 책들을 비 정경적인 책들과 구분하는 일을 시작하여 367년 라오디게아 공의회에서 요한 계시록을 제외한 신약 성경 목록을 마련한 후, 397년 제3차 카르타고 시노드에서 처음으로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선정하였으며, 419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확증되어 모든 외경과 위경을 금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가 많이 곁길로 빠졌지만, 오로지 예수님에 대한 사랑에서 그 사랑을 마리아 에게까지 확대시키며 싸움터가 되었던 “에베소의 종교회의”는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통해서 에베소에 보내는 편지를 쓴 후에도 몇 백 년이나 지나서 이루어진 회의였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아직까지도 살아 역사하며 우리의 마음을 때리는 것을 보면, 이런 것을 미리 내다보시며 사도 요한이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첫 사랑을 잃어버렸다”며 책망을 하였던 것이 아닐까요?

사랑이란 회의의 결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러러 나오는 마음으로 하는 것인데….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란 때와 주위의 환경에 따라 너무나도 잘 변하는 것인데…. 허나 한가지 중요한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일 것입니다,

그 길을 잘 모르는 저는 누군가가 미리 닦아 놓은 그 길을 걸어야 할 테인데 그 길의 끝이 어디로 인도하는지…? 언제 즈음 알게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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