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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68)-에베소(7) '사도 요한 기념 교회'
bs2000

 

유적지를 나와 버스로 이동한 곳은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는 요한 기념 교회 터였습니다. 이 역시 지금은 다 부서진 채로 몇개 안 남은 벽과 기둥들이 그 당시의 위용을 말해줄 뿐 폐허,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따른 12사도 가운데 최연소이자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로 기록된 사도 요한의 삶은 예수의 공생애 초기부터 초대 교회의 발전과 박해과정을 몸소 체험하며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을 쓴 후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요 21:22)”라 하시던 주님의 말씀대로, 오랜 삶 후 자연사한 최후의 제자였지만 그의 일생은 실로 “파란만장한 삶” 이었습니다.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부유한 선주, 세베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요한은 아마도 이웃 동네 벳세다에 살던 어부 시몬(후에 베드로가 됨)의 동생 안드레와 함께 당시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던 세례 요한의 제자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1장 35~42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에게 제자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0절에서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라고만 하였지 다른 한사람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하며 자신의 이름을 마치 삼자의 이름처럼 기록하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었겠지요. 마태복음 4장에서 설명하는 “제자를 만나는 과정”이 요한복음과는 조금 다르지만 아마도 요한의 기록이 조금 더 정확할 것 같은 정황입니다.

이어서 안드레가 제 형, 시몬에게 가서 전도하여 예수님께로 데리고 오니 예수님께서 시몬을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며 이 셋을 처음 제자로 삼으신 후 이어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시니, 예수님은 모두 5명의 제자와 함께 사흘 후에 가나의 잔치에 참석하시었던 것입니다. (26회, 가나의 혼인잔치 참조)

요한과 그의 형 야고보는 베드로, 안드레 형제와 함께 갈릴리에서 성공한 선주이자 요한과 야고보의 부친인 세베대의 배에서 함께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었으나, 요한과 안드레는 먼저 배를 떠나 세례 요한의 추종자로 지내던 중 예수님을 만나 따르게 되었고, 시몬은 동생 안드레의 인도로 예수님을 만난 후 배를 떠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부유한 집안의 둘째 아들인 요한은 타고난 과격한 성격 때문에 예수는 요한과 야고보 형제를 아울러 “보아너게”, 즉 “우뢰의 아들”이라는 뜻의 별명을 붙여주었지만(막 3,17), 요한은 야이로의 죽은 딸을 되살리는 기적의 장소에도, 다볼산(변화산)에서의 변모를 목격하기도 하며,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와 같이 예수님의 중요한 행적마다 수제자 베드로와 함께 예수와 가장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앞에서 올려다 보고 있던 세베대의 아들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9: 26~27)

그 후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모시고 예루살렘에 거주하다가 AD 66년, 티투스에 의해 유대인 봉기가 처참하게 진압당하던 전쟁의 혼란 속에 마리아를 모시고, 그 당시 디모데가 교회를 돌보던 에베소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이 때 아버지인 세대베와 어머니도 함께 이주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마리아만 모시고 빠져나온 것 같습니다.

AD 64년(어떤 기록은 62년), 사도 바울이 순교 당한 후, 에베소 교회를 인도하던 디모데마저 AD 80년, “5월 아데미 축제” 때 열광하는 군중을 향해 “여신은 우상에 불과하다”며 말씀을 선포하다 군중이 던진 돌에 맞아 순교하자, 사도 요한이 디모데에 이어 에베소 교회를 맡아 목회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박해가 절정에 이른 AD 94년경 에베소(Ephesus)에서 사역하던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 있는 “도미티아누스 신전” 앞을 지나다가 황제의 동상 앞에서 경배하기를 거부하므로 로마 군사들에게 연행되어 재판 결과 사형을 언도받은 후 독배를 마셨으나 아무런 해를 받지 않아, 펄펄 끓는 기름 솥에 던져졌지만 “온 몸이 녹아내리고 뼈가 휘어졌으나 죽지 않는다”고 보고를 하자 황제는 부하들에게 "이는 분명 신이 내린 사람이라며 사람의 손으로 죽이지 말고 밧모섬으로 유배를 보내라"고 하여 AD 95년경부터 사도 요한은 밧모섬 채석장에서 노동을 하던 중, AD 96년 도미티아누스가 죽은 후 석방돼 에베소로 돌아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고초의 내용은 그리스 정교회의 전승으로 전해오며 밧모섬의 요한 기념 수도원 벽에 벽화로도 남이 있습니다.

마치 다니엘의 3 친구가 당한 이야기(단 3:17)와도 유사한 일이 신약 시대에도 일어 났습니다마는 이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인지 별로 예화로 이용이 안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요즈음 사람들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런 “초자연적인 일”을 믿기에는 너무나도 지혜(?)스러워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던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에베소로 돌아와, “요한복음”을 비롯하여 “요한1·2·3서와 “요한계시록”을 남긴 후 AD 100년경에 95세라는 나이에 주님 품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요한의 시신은 에베소 근교의 아야술룩(Ayasuluk 현재의 셀축) 언덕 위에 묻혀 있다가 AD 313년, 기독교가 공인된 후, 에베소에서도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자 요한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 목재로 된 교회가 건립되었습니다.

그 후, 그 작은 기념교회가 있던 자리에 6세기 들어 “아야 소피아 교회”를 건축한 유스티아누스 황제(527~562)가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요한 기념교회를 십자가 형태의 건물로 건축했는데, 안뜰, 현관, 본당, 부속 예배당, 세례장, 이렇게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고, 본당 제단에는 특별히 복음서의 저자들을 상징하는 네 개의 기둥과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세 개의 기둥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교회 건물은 14세기 초에 지진으로 회생불능의 손실을 입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스만 투르크군이 이곳을 점거함으로써 재건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슬림들에게도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의 전승이 전해졌고, 일부 무슬림들도 이곳을 참배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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