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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54)-고린도 운하(Corinth Canal)와 유적지
bs2000

 

유럽 대륙의 남단, 지중해의 동북부로 삐죽 나온 땅을 차지하고 있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서쪽으로 77km 떨어진 곳에는 사람의 몸으로 치면 꼭 맹장 같은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붙어 있습니다. 이 반도를 대륙에 붙여주고 있는 고린도 지협이 반도 서쪽의 이오니아 해와 동쪽의 에게 해를 가로 막고 있어, 실크로드를 타고 동양에서 비잔티움(현재의 이스탄불)까지 온 신기한 문물들을 로마로 운송해야 하는 뱃사람들과 이재에 밝은 상인들에게는 약 700km의 뱃길을 돌아가야 하는 시간과 또 풍랑의 위험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한 때에는 그리 크지 않은 배는 겐그레아 항구에서 땅 위로 올려, 올꼬스 네온(배를 견인하는 마차)를 이용하여 배를 지협의 서쪽 끝으로 끌고가 고린도만의 레헤온 항구에 다시 띄웠었습니다.

약 7km되는 거리에, 폭은 3~5.5m되는 Diolkos라 하는 길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주로 선실이 없는 전함을 옮겼다고 하나, 상선일 경우에는 겐그레아 부두에서 선내의 짐을 하역하여 배를 가볍게 한 후 고린도만의 레헤온 항구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런 불편함이 있었으니 고대 고린도를 그리스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국가 중의 하나로 만든 참주(僭主) 페리안더(Periander)에 의해 최초로 이 지협을 파 운하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워낙 굳은 지반을 파내는 과업의 장대함으로 그 시대에는 실현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많은 지도자들이 운하 계획을 가졌으나 실현하지 못하였다가, AD 67년, 네로 황제 때 비로서 실제 작업에 들어가 6,000명의 유태인 노예와 죄수들을 동원하여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나 이 또한 갈리아 인들의 침입에 의해 중단된 후 오랜 세월 방치되었다가 마침내 1883~93에 프랑스 엔지니어회사에서 이 운하를 성공시킴으로써 세계 3대 운하 중의 하나를 만들어,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섬이 된 것입니다. 결국 2천 600여년 만에 처음의 계획이 이루어져 반도가 섬이 된 셈이지요.

이런 운하를 보기 위하여 신들의 도시, 철학의 도시, 민주주의의 모태인 아테네를 떠나서 고린도로 향하였습니다.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는 것이, 신탁도 받지 않고 떠나는 게 좀 언짢았나 봅니다. 그래도 우리는 "고린도로 가자!” 니까요. 이 말뜻의 속내를 눈치 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ㅋㅋ(다음 주에 소개 됩니다.)

가이드의 입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새에 벌써 1시간 남짓 달려온 모양입니다.

조금 앞에 보이는 다리로 가 보랍니다. 무엇이 보이는지…. 쇠로 만든 다리는 별 볼품이 없는데 막상 다리 위에 서니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동안 성경책 밑에 나오는 조그마한 사진으로만 보아 오던 고린도 운하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요! 마치 두부를 반듯하게 자른 듯이 바위를 잘라 만든 고린도 운하로 때마침 배가 한 척 지나갑니다. 하늘이 개였더라면 조금 더 좋았을 것을…. 아쉬웠지만 그래도 눈으로 직접 보는 그 운하의 경관은 정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제가 서있는 다리에서부터 해수면까지의 깊이가 자그마치 86m나 되게 수직으로 깎아 내린 바윗돌이고, 해면으로부터 수심 깊이가 10m나 되며, 해수면의 폭이 22m요, 위로 올라오면서 점점 더 넓게 파여져서 크루즈도 다닐 수가 있다는 세계 3대 운하 중의 하나인 이 고린도 운하의 길이가 자그마치 6.8km라는데, 너무나 곧게 파여서인지 그 끝이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양쪽의 수면 높이를 조절하기 위한 갑문도 보이지 않고, 그저 휑하니 뚫려 있는 물길이었습니다. 양쪽 끝 바다가 훤히 보이는 이 운하로 인해서 700km의 뱃길이 줄어들었으니 운하가 개통된 후 얼마나 많은 시간과 경비가 절약되었는지 헤아리기가 힘겹습니다.

요즈음에는 젊은이들 사이에 Bungy Jumping 하기에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나서 배가 없을 때에는 이 곳에서 많이 뛰어내리기를 하기도 한답니다.

저~~~ 밑에 지나는 배 위에 탄, 조그마하게 보이는 사람이 더 작게 보이는 손을 흔들며 올려다 보기에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지요. 이제는 이 운하를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으니까요.

 

고린도 유적지

운하를 지나서 옛 고린도 유적지로 향하였습니다. 고대 고린도가 그리스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국가 중의 하나였다고 하는데, 그리고 로마 시절에도 아가야 지방의 수도였다는데 유적지가 아직 다 복원이 안되어서인지 Old Town에는 번듯한 유물도 유적도 별로 많지가 않았습니다.

고린도 전서를 통하여 나타난 그 시대의 퇴폐상은 그저 땅에 널려진 채 아직 복원이 안된, 부서진 돌 무더기를 보면서, 그리고 자그마한 박물관에 진열된 유물을 보면서 유추해 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원에는 목이 없는 많은 대리석상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우리로 하여금 목 없는 사열을 받게 하였습니다. 목이 없는 몸이라,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석신으로 사는 것이 편하기는 한 모양입니다. 2000년을 넘게 아직 서서 우리에게 사열을 베푸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일설에는 신상파괴운동이 휩쓸었던 서기 730년서부터 843년까지의 100년 동안에 목이 달아난 흔적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일설은 그 당시 이렇게 많은 몸통을 미리 만들어 놓은 후 구매자가 나타나 몸통을 고르면 그 위에 구매자의 두상을 만들어 붙여 주었다고도 하나 어느 게 진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진실을 이야기하여 줄 수 있는 입들이 지금은 하나도 없으니 말입니다.

실내 전시실로 들어서니 많은 조각들과 부서진 토기 그릇들이 진열되어 있는 중에 가장 눈을 끄는 것이 제법 잘 보존된 자그마한 스핑크스였습니다. 스핑크스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이집트 기자의 대 스핑크스를 연상하며 사자의 몸뚱이에 사람의 머리를 붙인 동물로, 왕권의 상징으로 생각하나,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사악한 여성 괴물이었습니다. 상반신은 여자이고 하반신은 독수리 날개가 있는 사자로 모습은 비슷하나 그리스어 스핑크스(Σφ?γξ)는 ‘교살자’ 다시 말해 '목을 졸라 죽이는 자'라는 뜻이랍니다.

전설에 따르면 욕정 때문에 미소년을 범했던 그리스의 테베 왕 라이오스를 벌하기 위해 헤라가 이집트로부터 보낸 괴물이라고 합니다. 이 스핑크스는 길목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문제를 내는데, 맞추지 못 하면 잡아먹는 괴물로도 유명하였지요. (무슨 문제인지 모두들 잘 아실 것입니다. 네발, 두발, 세발)

이 스핑크스 때문에 이디프스 콤플렉스라는 말이 이 땅에 생겨나고, 이것이 아직도 건재하게 진열되고 있는 고린도이기에 고린도 전서를 통해서 사도 바울이 주의를 주도록 이 지역이 음행이 심했던 것일까요?

박물관을 나서니 뒤로 높게 솟은 산 위의 아프로디테 여신의 신전 터가 보였습니다. 산 위에는 남성을 유혹하는 여신들, 땅 아래에는 길목을 지키는 스핑크스!

어쩜 고린도와 잘 맞는 조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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