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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억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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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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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김대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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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1
무엇이라 부를까요?

 

오래 전 Tyndale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할 때 조직신학을 강의하던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다.

그가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축하연을 베풀어 주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가족과 친지들은 그가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박사 학위를 획득한 것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진심으로 축하하고 격려해 주었다. 그들은 그가 힘든 학위과정을 잘 마칠 수 있도록 건강과 인내와 지식과 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함도 잊지 않았다. 축하연이 끝나고 모두가 돌아간 후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응접실로 향했다.

잔치가 끝난 후의 적막 속에 마주 앉은 부자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아들아, 난 정말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구나. 너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던 때가 어제 같은데 지금 목사요, 대학교수요, 신학박사가 되어 내 앞에 앉아 있으니 말이다.” 잠시 말을 중단한 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지금 너에게 주어진 목사, 대학교수, 신학 박사 세 가지 중 무엇으로 불렀으면 좋겠니?”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고, 의외로 심각한 아버지의 표정에 그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러나 곧 태연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무엇이면 어떻습니까? 아버지 생각에 제일 좋은 것으로 불러주셔요.” 아들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조용하면서도 엄숙하게 말했다. ”아들아, 난 너를 목사라 부르련다.”

이 이야기를 젊은 교수에게서 들으면서 난 그의 아버지를 찾아가 머리 숙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분이야 말로 목사의 사명이 무엇이며, 목사를 임명하시는 분이 누구신가를 잘 아는 분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대학교수나 신학박사보다도 목사라고 아들을 부르기를 원하는 그 분의 마음은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귀중한 교훈이라 생각했다.

 

오랜 기간 자신이 택한 분야의 학문을 연구한 후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대학교수의 직분은 귀한 것이며 사람들의 존경이 대상이 되고도 남는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신학을 깊이 묵상하며 연구하여 획득한 신학박사 학위는 자랑할 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에 반해 목사란 신분은 내세울 것도 없으며, 사람들이 부러워하거나 찬탄할 대상도 아닌 것 같다. 그러서인지 목사들 중에는 신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목회를 하면서도 목사보다는 교수나 박사로 불려 지기를 원하는 분들이 적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목사는 보잘 것 없거나 교수나 박사에 미치지 못하는 미비한 신분이나 존재가 아니다. 반대로 목사는 세상에서 제일 축복 받은 자랑스러운 신분인 것이다. 예수님이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셨음을 상기하면 이 사실은 자명해 진다. 물론 성경에는 노아, 아브라함, 모세, 엘리아, 이사야 등 세례 요한 보다 더 크고 위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긴 지도자들이 여럿 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 세례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 제일 큰 사람”이라 하신 까닭은 그에게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 하는 사명”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목사는 하나님께서 “내 양을 치라”는 특수 사명을 주시며 임명하신 하나님의 일꾼이다. 때문에 목사처럼 자랑스럽고 축복받은 신분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으니 목사에게 교수나 박사나 그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귀중한 “하나님의 양을 치는 사명”이 주어졌다면 목사는 그 사명을 맡기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목회자가 하나님의 뜻 아닌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일 한다면 그처럼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사명 완수에 실패한 목사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추락하여 아무 쓸모 없는 고철이 되는 것 같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못을 거꾸로 박아놓은 널판지 위를 걸으셨던 주기철 목사님. 자기 아들들을 살해한 범인들을 용서하며 하나님께 충성한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 한국교회의 성자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신 한경직 목사님.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들의 삶을 불사른 한국기독교 역사에 영원히 남을 주의 종들이었다. 이에 반해 적은 현실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예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정치 목사들이나 사이비 목사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손과 발에 또 다시 못을 박고 있음을 생각하면 가슴 아파진다.

나에게 목사의 길을 가도록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린다. 그리고 목사로서 이 곳 캐나다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시고 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께 감사한다. 내게 주어진 목사의 사명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생명의 불길이 꺼지는 순간까지 기쁘고 자랑스럽게 수행해 나갈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daekim
김대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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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3
사울의 생애 (4)

- 하나님을 떠난 사울의 비참한 생애 -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며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며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잡으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에게 중상을 입은지라.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무기를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려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골짜기 저쪽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 쪽에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에서 사니라.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려 왔다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의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내고, 그의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의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이 일어나 밤새도록 달려가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내려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가서 불사르고, 그의 뼈를 가져다가 이베스 에셀 누마 아래에 장사하고 칠 일 동안 금식하였더라.(삼상 31:1-13)

 

사울은 다윗이 가는 곳마다 그를 제거하기 위해 추격했지만 그의 아들 요나단과 딸 미갈은 아버지 사울의 계획을 다윗에게 미리 알려주거나 그가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는 등 다윗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특히 요나단은 사울이 “너는 어째서 이새의 아들 다윗 편을 드느냐? 그가 죽어야만 네가 왕이 될 수 있는데 왜 그를 살리기 위해 그처럼 애쓰느냐?”는 아버지의 책망을 들으면서도 다윗을 구하려는 그의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다윗을 그의 생명처럼 사랑하였기 때문이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는데 그 중에서 그가 범한 가장 큰 죄악은 제사장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것이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여러 곳으로 도망 다니다 놉으로 피신한 적이 있다. 그때 그 곳에 있던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음식도 주고 골리앗의 목을 베었던 칼도 주는 등 호의를 베푼다. 그런데 이 사실을 사울의 수족 같은 부하 도액이 왕에게 고해바친다. 그러자 사울은 아히멜렉을 불러 어째서 다윗과 공모하여 그를 대적하느냐며 질책한다.

 

아히멜렉은 다윗만큼 왕에게 충실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답한다. 죄 없는 다윗을 변호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의도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는 충신의 충언이기도 했다. 그러자 사울은 진노하여 호위병들에게 아히멜렉을 비롯한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명한다. 그러나 아무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제사장들에게 손을 대려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울은 간신 도액에게 제사장들을 죽이라 명했고, 도액은 주저하지 않고 아히멜렉을 비롯한 제사장 85명을 도륙한다.

 

제사장들을 죽인 것은 도액이다. 그러나 그들을 죽이라 명령을 내린 것은 사울이다. 따라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명한 사울이야 말로 제사장들을 대량 학살한 장본인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무더기로 죽인 사울의 죄악은 용서받을 수 없이 중한 것임에 틀림없다. 사울이 이 같은 죄까지 범했다는 사실은 그가 하나님을 떠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게까지 되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의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고 비참하게 끝날 것인가를 말해주기도 한다. 사울은 그가 다윗을 죽임으로 그의 왕권을 다윗에게 넘겨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무산시킬 수 있다고 믿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같은 생각은 악령에 사로잡힌 그의 망상에 불과했음은 길보아 산 전투에서 밝혀진다.

 

길보아 산에서 벌어진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사울의 세 아들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가 전사하고 사울 자신도 적의 화살에 맞아 중상을 당한다. 그러자 그는 호위병에게 “내가 블레셋 이방인들에게 죽는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네 칼로 나를 찌르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그의 부하가 겁에 질려 그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자 사울은 자기 칼을 뽑아 그 위에 엎드려져 죽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를 떠나 방황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도전하는 사울이 이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내버려 두심으로 사울의 왕권을 끝내고 그의 마음에 합당한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왕권을 이어가도록 하신 것이다.

 

사울은 자기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고, 힘이 없는 베냐민 지파 출신인 그가 왕권을 확립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고, 이방 침략군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지킬 수 있는 능력과 힘을 주신 사람이 사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그가 왕위에 오를 때까지의 겸손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세를 유지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나라를 다스렸다면 사울은 이스라엘을 반석 위에 굳게 세우고 하나님의 인류구원 성취에 크게 사용되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교만하여져서 자기 자신을 과신하게 되어 자신의 뜻과 판단에만 의존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치하며 나라를 이끌어갔다.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사울은 왕위에 대한 집착과 다윗을 향한 강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여 죽이고 음모하는 부끄럽고 타락한 인생을 살다 결국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는 은총을 받았으면서도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이처럼 실패한 인생을 살다 간 사울의 슬픈 생애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인생의 교훈은 많기만 하다. 그들 중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가장 크고 중요한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하나는 하나님에 품에 거하며 그 분만을 의지하고 그의 뜻에 따라 사는 모든 사람들과는 성령께서 동행하시며 인도하셔서 계획하고 추구하는 모든 일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보람되고 성공된 삶을 살도록 해주신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하나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떠나면 그 순간부터 사탄의 무자비한 공격 앞에 속수무책으로 자신을 노출시키게 되어 잎만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살다 돌아설 수 없는 “멸망”이란 종착역에 도달하여 슬피 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daekim
김대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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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
여행과 동반자

오래 전 단체로 미 서부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 5박 6일 동안 우리 일행을 담당했던 안내원은 여러 번이나 “여행은 목적보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합니다”란 말을 했다. 여행을 좋아해서 기회 있을 때마다 북미의 여러 곳들을 다니면서 나도 늘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의 말에 동조하면서 마음속으로 그에게 들려주었다. “과정이 의미 있으려면 좋은 동반자를 만나야 한답니다”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 보다 몇 년 전에 한국에 다녀오며 여행의 과정과 동반자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지녔는가를 피부로 느꼈던 기억을 회상해 보게 되었다.

 

그때 고국을 다녀왔던 여행은 처음부터 기억할 만한 일로 시작되었다. 집을 나서려는데 표를 구입한 여행사에서 “좋은 자리를 마련해 드렸으니 편히 다녀오시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공항에 나가 수속을 마치고 기내에 들어가니 2층에서도 제일 공간이 넓은 앞자리가 내 좌석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널찍한 좌석이 침대처럼 거의 수직으로 눕혀지는 특등석에 편히 누어 하늘을 나르면서 나 같은 평범한 고객에게까지 최선을 다해 이런 호의를 베푸는 여행사 측에 감사했다.

 

새벽 1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세관을 빠져나가니 토론토에서 서너 번 도움을 준 일이 있는 L씨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부인에게서 내가 서울 간다는 전화를 받고 한 밤중에 인천까지 달려온 것이다. 서울행 리무진이 운행을 시작하는 4시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이 그의 차로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 도착하니 그 곳을 예약해준 K목사님 말대로 경비원이 친절하게 지정된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나를 향한 주위 분들의 사랑과 호의에 감사하며 서로가 성의껏 상대를 돕는다면 모두들 기쁨과 만족을 느끼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몇 시간 수면을 취하려 했다. 그러나 걸려오기 시작한 전화들 때문에 쉴 틈도 없이 서울에서의 첫 날을 시작해야 했다. 숙소를 나서는 순간부터 혼탁한 공기로 목이 따끔거렸고, 어디를 가나 자동차와 사람들로 봄비는 서울 시내가 극도로 복잡하면서도 생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참으로 감사하게도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이 거대한 도시에서 이방인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었다. 세 번 이상이나 강산이 변하는 오랜 세월 동안 불과 세 번째로 찾아온 나이기에 그런지는 몰라도 모두들 진정으로 반가워하며 다정하고 따뜻하게 맞아주었기 때문이다. 계획했던 일들도 기대이상으로 잘 해결되었고, 수필집 “달팽이의 행진”도 출판사에서 좋은 조건들을 제시해 주어서 만족할만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서울 방문이 진정 잊을 수 없는 여행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시절 글자 그대로 서로의 분신처럼 지내던 친구들과 서해안 일대를 돌아볼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친형제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던 일곱 명 중에서 미국에 있는 춘배군과 국내에 있기는 하지만 건강문제로 집을 떠날 수 없는 J군을 제외한 우리 다섯은 차에 오르는 순간부터 억제하기 힘든 감격과 흥분에 사로잡혔다. 마음은 간직한 꿈으로 늘 풍요했지만 주머니는 언제나 비어있었기에 우리들은 언제나 “가진자”들의 풍요를 애써 외면하며 우리들에게도 저들과 같은 날이 오리라는 희망만을 품고 지내야 했다.

 

대학 2학년 때, 춘배군과 윤식군 그리고 내가 동해안을 따라 소위 무전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다. 그러나 그때 주머니가 비었던 우리는 여행 내내 불안했고 배고팠다. 서울서 강릉까지 가는 기차에서 우리 앞에 앉은 중년 신사가 점심으로 삶은 계란이 수북이 담긴 찬합을 열고 꺼내 먹은 것을 보며 우리 셋은 침을 삼키며 쳐다보고만 있어야 했다. 난 속으로 그가 “학생들, 하나씩 먹겠어?”라며 계란을 우리들에게 집어 주기를 바라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계란 대 여섯 개를 먹어 치우더니 남은 계란들이 들어 있는 찬합 뚜껑을 닫고 짐 속에 집어넣었다.

 

그때 일이 어제 같은데, 고급 승용차를 타고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는 처지들이 되어 서해안을 달리면서 내 마음에 찾아든 감격은 크기만 했다. 하지만 진정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것은 밤과 낮이 다른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40 년 가까운 긴 세월을 서로의 삶에 몰두하던 우리들이 전혀 간격 없는 학생 때의 너와 나로 되돌아가 여행길에 오르게 된 사실이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차를 몰며 우리들이 함께 지낸 2박 3일은 진정 아름답고, 보람되고, 의미 있었던 나의 삶 속에서 잊을 수 없는 기간이었다.

 

우리들이 서해안 일대를 60여 시간에 걸쳐 누빈 그 여행이 내 생애 최고의 여행 중의 하나로 간직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같이 간 동반자들 때문이었다. 세상은 놀랍게 변했고, 그 무서운 변화의 물결을 타고 넘으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엄청나게 달라졌지만 대학시절 무임승차를 하는 모험까지 단행해가며 무전여행을 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달리는 차 안에서 함께 웃고 노래 부르며 우리 다섯은 모두 티 없이 맑고 고운 그 옛날의 꿈 많던 대학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기에 함께 먹고 마시며 호흡한 3일을 통해 난 “Es ist eine Freude“(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란 시성 괴테의 말을 가슴속에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얼마가 될지는 몰라도 남은 인생의 여행도 이런 동반자들과 더불어 동행하며 마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그들에게 필요한 동반자가 되어야 하리라. “나의 것이 되어 달라”는 대신 “너의 것이 되어 주겠다”는 독일 청년의 마음을 지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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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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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4
잊을 수 없는 장례식

 

장례예식을 여러 번 집례했고, 참석하기도 했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례식이 있다. 그것은 30여 년 전에 있었던 어느 백인 여인의 영결예배였는데, 그녀는 우리가 세 들어 예배 드리던 교회 재정장로의 아내였다. 그 장로는 교회의 재정뿐만 아니라 건물관리까지 담당하고 있었기에 나와는 상당히 자주 접촉하며 개인적으로도 가까운 사이가 되었었다. 그런 관계 때문에 그의 아내 캐롤이 간암 선고를 받고 투병생활을 할 때 몇 번 문병을 갔었다. 우리부부가 갈 때마다 그녀는 죽음을 앞에 둔 사람 같지 않게 명랑한 표정과 정다운 미소로 우리를 맞이하곤 했다. 그러기에 그녀의 부음을 접하고 진정 섭섭하고 슬픈 심정으로 장례식장인 교회로 들어섰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본당입구의 넓은 홀 벽을 따라 캐롤이 태어나서 사망할 때까지의 특기할 만한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조객들과 더불어 그 사진들을 보며 홀을 한 바퀴 돌고 나니 그녀가 살다 간 인생의 축소판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네를 타며 방긋 웃는 그녀의 유아시절 모습. 청순한 소녀시절에 찍었든 사진들, 학사 모를 쓰고 찍은 대학졸업 사진, 행복의 문을 두드리던 결혼식 장면들, 교회를 위해 봉사하던 모습들, 운명하기 며칠 전 남편과 더불어 찍은 생의 마지막 사진들을 남겨놓고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 영원한 나라로 들어간 캐롤과 지상에서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니 일반 장례식과는 전혀 다른 영결예배를 드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일 앞에 놓여 있어야 할 관은 보이지 않고 고인의 사진만이 크게 확대되어 전면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그녀의 시신은 이미 유족들조차 알지 못하는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장기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증하고 시신의 나머지 부분들도 매장하거나 화장하는 대신 의학실험용으로 사용해 달라는 그녀의 유언대로 사진만을 걸어놓고 진행하는 특수 장례식이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거행되는 장례식도 있다고 여기며 단순하게 넘겨버리기엔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장례식이었다.

 

우선 본당으로 들어오기 전에 홀에서 사진들을 통해 본 캐롤의 일생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로 계절이 바뀌면 일 년이란 세월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듯 인간도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그리고 노년기를 거쳐 떠날 수밖에 없는 지극히 유한한 존재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도 삶의 마지막 장인 노년기까지 이르지도 못하고 인생이란 무대에서 퇴장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보면 다음 막이 열려도 나의 역할은 필요 없는지도 모른다는 가정 밑에 현재의 배역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인생임을 실감하게 되면서 말이다.

캐롤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녀의 육신을 송두리째 기증하면서 이 세상을 떠나간 것 또한 장한 결단이라 믿는다.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을 경우 장기를 기증한다고 운전면허증에 서명하는 것조차 꺼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그녀가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가장 보람 있게 사용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숱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며 모은 재산을 한 번도 유용하게 써보지 못한 채 떠나가는 사람들이나 이웃과 사회를 위해서는 아무런 유익도 끼치지 못하고 자기만을 위해 살다 캐딜락에 실려 장지로 향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생명의 불길이 꺼진 육신까지도 사회에 바치고 떠난 캐롤의 행위는 참으로 의미 있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잘 아는 분의 형님이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었는데”라고 한숨지으며 운명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그 분 뿐 아니라 요즘 우리들 주위에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말을 하는 분들이 한 둘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무슨 범법행위나 이웃이나 사회로부터 지탄받은 일을 했기에 그런 후회를 하며 떠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네들이 살아온 인생을 후회하며 떠나는 근본원인은 좀 더 보람 되게 살지 못한 데 있기 때문이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세월 따라 살아가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아올 수 없는 그 나라”를 향해 떠나야 할 지 모르는 것이 인생임을 잊지 말아야 할 줄 안다. 그래야만 세월을 아끼며 남의 가슴에 못을 박거나 사회에 불이익을 끼치는 대신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와 도움을 주는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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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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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7
사람을 찾습니다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산골짜기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평화로운 촌락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타인” 아닌 “친구”로 대하는 인정이 담뿍 담긴 곳이었다.

 

이 곳에 코 흘릴 때부터 함께 자란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마을 전체가 구릉지대로서 산으로 들러 싸였고, 한 가운데로 강이 흐르고 있어 마을 자체가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었고, 거기엔 미끄럼틀, 시소, 그네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 작은 천국과 같은 어린이 놀이터에서 소년과 소녀는 손에 손을 잡고 뛰노는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그들 사이엔 “네 것과 내 것”이 없었다. 그들은 미움과 적대의 감정이 무엇인지 조차 몰랐다. 그들은 평화의 동산과 같은 마을에서 서로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며, 맑고 구김 없이 자라났다.

 

그들의 나이기 10살이 되었을 때 소년과 소녀의 부모들은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를 찾아 각기 먼 도시로 떠나갔다. 그래서 두 아이는 이별의 의미조차 모르는 채 헤어져야 했다.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새소리와 물소리를 들으며 살던 두 아이가 오염된 도시의 공기를 호흡하며, 문명의 이기가 생산해내는 온갖 소음들을 들으며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대를 향한 인정이나 배려 같은 건 찾아볼 수도 없고 대도시의 사람들 틈에서 산골 마을에서 누리던 평화와 화평과는 거리가 먼 갈등과 분쟁을 맛보며 살아야 한다는 건 더욱 괴로운 일이었다. 그들은 이처럼 너와 나의 구분이 너무도 뚜렷한 삶의 현장에서 20여 년을 살면서 떠나온 그들의 낙원을 그리워했다.

 

그러든 어느 날 이제는 성숙한 신사 숙녀가 된 두 사람에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약속된 날, 먼 길을 달려 시이소 공원에 도달했을 때 그들의 가슴은 내려앉았다. 그 한가하고 평화스럽기만 했던 놀이터에서 옛날의 자취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원 가운데로 흐르던 맑은 냇물은 흙탕물로 변했고, 그네와 시소와 미끄럼틀 외에 여러 가지 놀이 기구들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인지 낡고 더러웠으며, 그 주위에서 노는 아이들도 낮 설어서 그런지 귀여워 보이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그 옛날 소꿉동무를 찾기 시작했다. 서로의 분신 같던 그 따뜻한 손을 잡고,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실망한 마음에 위로를 찾고자.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그리던 그 동무를 찾을 수 없었다. 울고 싶은 심정으로 공원을 빠져나가다 그들은 마주쳤다. “톰!”, “메리!” 마주 부르는 그들이 목소리엔 어색함이 깃들어 있었고, 마주 보는 눈길에서 당황함이 교차되었다. 톰이 찾고 있던 메리나, 메리가 찾고 있던 톰은 성인 아닌 10살 난 소년과 소녀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때 난 20년 전 헤어진 친구를 만나러 온 그들이 어째서 아이들 사이를 헤매는 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난 그들이 진정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흐르는 세월 따라 자신이 장성했듯이 상대도 어른이 되었을 것을 그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들이 만나고 싶었던 친구는 아직도 천진난만한 소년 톰과 소녀 메리였던 것이다. 허리를 굽히고 꼬마들 틈을 헤치며 어린 시절의 동무를 찾아 다니는 톰과 메리를 보며 난 디오게네스를 생각했다. 2,300여 년 전,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들고 정직한 사람을 찾아 아테네 거리를 헤매던 그 철학자를 말이다.

 

우리들도 참되고,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아낌없이 투입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처럼 절실하게 의롭고, 성실하고, 시대적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들이 필요한 때도 없으니까 말이다.

 

우리 동포사회에 조건 없이 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어린 톰과 메리 같은 사람들이 날로 늘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옳은 일이나 마땅해 해야 할 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처럼 값지고 보람된 일도 없을 것이다.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굶주린 자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일”은 성인군자들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땅한 의무임을 깨달아 행할 수 있는 날이 곧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임하는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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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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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9
사울의 생애(3)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리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용기를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하니, 이는 그가 생각하기를 내 손을 그에게 대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을 그에게 대게 하리라 함이라.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누구며 이스라엘 중에 내 친족이나 내 아버지의 집이 무엇이기에 내가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 하였더니, 사울의 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시기에 므홀라 사람 아드리엘에게 주었더라.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매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린지라. 사울이 그 일을 좋게 여겨 스스로 이르되 ”내가 딸을 그에게 주어서 그에게 올무가 되게 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으로 그를 치게 하리라“ 하고, 이에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오늘 내 사위가 되리라“ 하니라.(삼상 18:17-22)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좋아하므로 그가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으라. 내가 나가서 네가 있는 들에서 내 아버지의 곁에 서서 네 일을 내 아버지와 말하다가 무엇을 보면 네게 알려 주리라.“하고,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 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까닭 없이 다윗을 죽여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니이까?“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주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 하리라.“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고 요나단이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 앞에 전과 같이 있었더라.(삼삼 19: 1-7)

 

그의 왕권이 굳어지면서 교만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하여 자신의 힘과 능력에 의존하기 시작한 사울은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자신이 직접 드리는 죄를 범한다.(삼상 13:8-13)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블레셋과 전쟁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지치고 피곤한 군사들에게 금식령을 내리고(삼상 14:24), 아말렉과의 전투에서는 그들을 진멸하고 그들의 모든 가축들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좋은 것들은 남기고 병들거나 쓸모 없는 것들만 죽이거나 없애는 불순종의 죄도 범했다.(삼상 15:1-9)

 

이를 본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서 왕권을 거두어 그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을 택하여 그의 백성을 다스릴 왕으로 세우시기로 작정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은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에게 전달되었다.(삼상 13:13-14)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울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고 그의 자비와 용서를 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사울은 마음을 더욱 강퍅하게 하여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갖가지 죄악을 범함으로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된 놀라운 축복을 스스로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 살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신 후에도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까지 삼십 년 이상을 이스라엘을 통치한 사울은 영적으로 타락하여 사탄의 노예가 되었을 뿐만 하니라 그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만큼 많은 범죄행위를 저지른다. 그런데 사울이 범한 대부분의 죄악들이 하나님께서 그를 대신해 이스라엘을 맡길 다윗에 대한 시기와 다윗을 죽이려는 의도와 연결된 것들이었다.

 

사울이 다윗과 연결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엘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블레셋의 대장은 골리앗이라는 장수였다. 그는 키가 거의 3미터나 되는 거인이었고, 놋 투구를 쓰고, 57 킬로그램이나 되는 놋 갑옷을 입고, 다리에는 놋으로 만든 각반을 대고 놋 창을 들었는데 그 창 자루는 베틀 채만큼 두꺼웠고, 창날의 쇠 무게는 약 7킬로그램이나 되었으며 그의 방패를 든 호위병을 옆에 대동하고 있었다. 이처럼 보기만 해도 무서운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 진영을 향해 외쳐댔다. “너희 중 한 사람을 택하여 내보내라. 그가 나를 이기면 우리가 너희 종이 되겠고, 내가 그를 이기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많은 병사들을 고생시키지 말고 장수 대 장수의 대결을 통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자는 제안이었다. 사울은 골리앗과 대결할 엄두를 내지 못했으며, 그의 장수들 중 어느 누구도 골리앗을 상대해 싸우려 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다 베들레헴 에브라임 사람 이새가 그의 막내 다윗을 사울의 진영으로 보낸다. 이새에게는 아들이 여덟이 있었는데 장남 엘리압, 차남 아비나답, 삼남 삼마가 사울의 진영에서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새는 막내 다윗에게 빵과 치즈를 주며 형들과 그들의 상관에게 전해주라고 심부름을 보낸 것이다.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선 다윗은 적장 골리앗이 “누구든지 나와 싸우려면 나오라”고 외치는데 이스라엘 쪽에서는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겁에 질려있는 것을 보고 “저 이방인이 어찌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들 모욕하느냐?”며 분노한다. 그리고는 사울 왕의 허락을 받아 골리앗과 마주선다. 구척장신의 골리앗을 향하여 다윗은 “너는 칼과 창을 가지고 나왔지만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왔다”고 말한 후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꺼내어 물매로 그에게 던졌다. 그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아 꽂이고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다윗은 달려가 골리앗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 그의 목을 베어 높이 들었다.

사울과 이스라엘을 공포와 불안 속으로 몰아넣었던 엘라 골짜기의 전투는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이 전투기간 중 골리앗은 사울 왕에게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전 이스라엘을 떨게 만든 골리앗을 만난 것은 그의 인생에 찾아온 최대의 “기회”였다. 하지만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물맷돌로 쳐 죽인 것은 사울에게도 하나님께도 돌아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만일 사울이 골리앗을 죽인 무명의 목동 다윗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임을 인정하고, 그들 통해 블레셋을 물리쳐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면 그가 왕위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며 이스라엘을 반석 위에 울려놓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울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그가 승전고를 울리며 돌아올 때 이스라엘의 모든 성에서 여인들이 나와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 명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수만 명이라네”라 부르는 노래를 듣자 다윗을 이스라엘을 구한 이스라엘의 영웅 아닌 그에게서 왕권을 뺏으려는 적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그가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과 싸우다 패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때까지 다윗을 죽이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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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5
나를 변화시킨 찬송들


나는 어려서부터 참으로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모태 신앙이며 독실한 기독교인이셨든 부모님을 따라 주일마다 교회에 갔었고, 그때마다 할머니께서는 내게 새 옷을 입혀주셨으며, 연보도 (그때는 헌금을 그렇게 불렀다.) 꼭 빳빳한 새 지폐로 준비해 주시곤 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제일 착실한 주일학교 학생이었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중등부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고등부에 속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봉사하였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교회에 대한 나의 헌신과 열정과 충성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 대학 2학년 때에 일어난 한 사건으로 교회와 나 사이엔 넘기 힘든 높은 담이 쌓여졌다. 설명하자면 길지만 젊은 나의 생각과 판단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하나님의 처사에 대한 반발이 주요 원인이었다.

 

그 후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에 다니면서까지 교회에 발을 끊었으니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난 하나님을 떠나 나의 길을 걸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나의 곁을 떠나지 않으셨다. 외롭고 슬플 때마다 다섯 살 때 캄캄한 밤 넓은 정미소 마당에 깔아놓은 멍석에 엎드려 드린 기도를 그대로 응답하여 주신 예수님께서 날 찾아오셔서 품어 주셨고, 어쩌다 교회 앞을 지나게 되면 내가 탕자처럼 느껴져 도망치듯 그 곳을 떠나곤 했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저녁, 친구 C군과 영락교회 앞을 지나다 교회 뒷자리로 찾아 들어가 예배를 드리던 중 나를 억누르는 죄책감을 주체할 수 없어 거리로 뛰쳐나와야 했다. 그러나 나의 젊은 자아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기를 거부하고 나의 지성과 이성이 가르치는 길을 계속하여 걸어갔다. 그러면서도 각종 서류나 신청서를 기재할 때마다 종교란에는 망설이지 않고 ‘기독교’라 써넣곤 했다. 공군간부후보생에 응시할 때도 원서에 교인이라 자연스럽게 기재하였고, 합격되어 훈련을 받으러 가면서 짐 속에 성경과 찬송을 집어넣었다.

 

훈련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고 어려웠다. 한국의 지성인이라 자부하며 제멋대로 살아온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을 4개월 만에 공군장교로 임관시켜야 하는 훈련과정이 엄격하고 혹독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4반세기 동안 나름대로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던 민간인들이 엄격한 규칙과 규율을 준수하며 힘에 겨운 군사훈련을 받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구대장들이 한번 당해보라는 듯이, 때로는 장난 삼아 신체의 이곳 저곳을 마음대로 구타하며 비인간적으로 대할 때마다(그때에는 분명 그렇게 느껴졌다.) 분노가 치솟아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이런 육신적 고통과 정신적 갈등 속에 한 달이 지난 주일 아침 교회에 갈 후보생들은 연병장으로 집합하라는 전달이 왔다.

 

20 여 명의 후보생들이 주번하사의 안내로 기지교회 안으로 들어서니 예배가 막 시작되고 있었고,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란 찬송이 울려 펴지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도 잘 아는 그 찬송을 난 도저히 따라 부를 수가 없었다. 입을 열면 찬송을 부르는 대신 울음을 터뜨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가슴이 뜨겁게 벅차 올랐기 때문이다. 
강대상 앞에 선 김선도(전역 후 광림감리교회의 단임 목사가 되신 그는 당시 공군기술교육단에서 군목실장을 맡고 있었다.) 군목은 “예수를 바라보자”란 제목의 설교를 하셨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만을 바라보고 나갈 때 우리 앞을 가로막을 장애물은 없다는 요지의 설교였다. 

 

지극히 평범하고 간단한 내용이었지만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버리고 곁길로 나가던 나의 발길을 주께로 돌아서게 한 결단의 순간을 마련해 준 말씀이었다. 설교가 끝나고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를 부를 때 난 부끄러움을 잊고 울었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에 이르러서는 안경을 벗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찬송을 불렀다. 
그 날 이후 난 남은 훈련과정을 마치고 임관하여 군복무를 마칠 때까지 기지교회에서 드린 첫 예배 때 울면서 부른 찬송들을 수없이 반복해 불렀다. 그 찬송들은 혹독한 훈련으로 인한 육신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와 용기를 내게 주었으며, “명령과 복종”이 필수인 군대사회의 특수성을 무기로 삼아 부하들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통제하며 다루는 일부 상관들의 억지와 무지 앞에서도 나를 자제할 수 있게 해주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 찬송들은 내 삶의 활력소의 역할을 해주었다. 캐나다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에도 반백 년 이상을 극심한 인생의 우여곡절을 격을 때마다 기도하며 그 찬송들을 불렀다. 그럴 때마다 주님은 언제나 위기를 극복하고 절망을 이겨내며 새롭게 일어설 힘과 용기와 지혜를 허락해 주셨다. 그러기에 난 지금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때로는 소리 내어 혹은 속으로 그 찬송들을 부르곤 한다. 그러면 거의 예외 없이 내가 부르는 찬송들은 숱한 천사들이 부르는 합창처럼 아름답고 장엄하게 내 가슴 속에 다시 울려 퍼진다. 천국에 도달한 나의 찬송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듯이 말이다. 그러기에 난 인생의 종착역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나를 울린 찬송들을 기쁨으로 부르며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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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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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8
침몰하지 않는 배


                                     

1912년 4월15일 새벽 2시 20분, 대서양 한복판에서 세계 항해역사에 길이 남을 해난사고가 일어났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이다.

타이타닉호는 5만2,310톤으로 길이가 축구장의 두 배가 넘는 269m나 되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호화스런 여객선이었다. 해상 전문가들은 최신 장비와 시설을 갖춘 이 배는 어떤 상황에서도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라고 타이타닉호의 안전을 장담했다. 

그러나 타이타닉호는 그 처녀항해에서 빙산과 충돌했고, 불과 2시간반 만에 깊은 대서양 가운데 가라앉고 말았다.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던 세계 최대의 여객선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만물 중 먼지 만도 못한 빙산에 부딪쳐서 1,600여 명의 생명과 함께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 믿기 힘든 사건이 일어나기 1,900여 년 전, 갈릴리 호수를 힘들게 건너가는 한 척의 작은 고깃배가 있었다. 그 배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탄 초라한 목선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느라 심신이 지치신 예수님은 배 안에서 잠들어 계셨고, 피곤한 제자들은 거센 물결과 싸워가며 갈릴리 호수 위를 힘겹게 노 저어 가고 있었다. 갑자기 사나운 광풍이 일어나며 거센 물결이 배에 부딪쳐 왔다. 순식간에 배 안에 물이 가득 차서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겁에 질린 제자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선생님, 폭풍우가 몰아칩니다. 배가 뒤집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 주무시고 계시다니 말이 됩니까? 우리를 이 위기에서 구해주셔야 되겠습니다.” 
천천히 일어나신 예수님은 미친 듯 날뛰는 물결을 향해 “잠잠 하라”고 명령하셨다. 제자들은 성난 폭풍우를 꾸짖으시는 예수님을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풍랑은 언제 일어났느냐는 듯 잠잠해졌다. 성난 사자같이 울부짖던 거센 물결이 순식간에 순한 양처럼 되어 넘실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험한 풍랑이 이는 대양을 건너가는 순례자들이다. 때문에 수평선 저 너머 있는 희망의 언덕에 도달할 때까지 쉬지 않고 노를 저어 가야만 한다. 계속하여 몰려드는 높고 거친 파도를 타고 넘으면서. 
아무도 인생이란 항해 도중에 침몰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타이타닉호처럼 크고 안전하고 튼튼한 배를 타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돈과 명예와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그 배에 승선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잊고 있다. 타이타닉호의 비참한 최후를. 그리고 인간이 건조한 어떤 대형 선박도 우리의 인생 항해를 위협하는 폭풍우를 뚫고 안전한 항해를 계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생의 풍랑은 대서양의 파도보다, 갈릴리 호수의 물결보다 더 높고 거세기만 하기 때문이다. 고난과 슬픔이라는 파도가 소리치며 달려드는가 하면, 유혹이라는 폭풍우가 몰아치기도 한다. 예기치 못한 시련과 역경의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 산처럼 높은 좌절과 낭패의 물결이 우리가 탄 배를 후려치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를 태운 배가 아무리 크고 견고한들 이 같은 인생의 높고 사나운 파도를 헤치며 우리가 가고자 하는 건너편 해안에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겠는가?

무서운 인생의 풍랑을 이겨내고, 우리들이 사모하는 영원한 낙원에 도달할 수 있는 비결은 타이타닉호에 승선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작은 배에 함께 타고 계신 예수님을 깨우는 것이다. 산더미 같은 파도로 인해 낙엽처럼 흔들리는 우리의 초라한 배에 예수께서 타고 계심은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 침몰해 가는 우리 배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시다. 선미에 누워 계신 예수님이 곤히 잠들어 계시다고 우리들이 처한 위험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큰 잘못은 없다. 그 분은 입 벌리고 달려드는 성난 물결과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는 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안타까워하고 계신다. 곤히 잠든 그를 깨워 “주님, 이 환난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간구하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더 이상 우리들의 연약하고 미약한 힘과 능력으로 인생의 높고 거친 파도를 타고 넘으려고 하지 말자. 더 이상 겁에 질려 갈팡질팡 하지도 말자. 큰 배로 옮겨 타려는 어리석은 시도도 하지 말자. 그리고 우리와 함께 계신 인생항해의 선장 예수님께 아뢰자. 우리가 탄 작은 배가 인생의 풍랑으로 침몰해 가고 있다고. 그러면 예수께서는 “풍랑아, 잠잠하라” 명령하실 것이고, 인생의 풍랑은 잠잠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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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1
사울의 생애(2)-사울의 업적과 타락-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오지 아니하매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치려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 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하고,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삼상 13:5-15)   

이스라엘의 열두 족속 중 가장 연약한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스의 아들 사울을 왕으로 택하신 하나님은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추종하며 존경하도록 인도해주시며 그의 왕권을 확립시켜 주셨다. 그에게 경건한 마음과 사환의 충고에도 귀 기울이는 겸손함과 그를 배척하는 사람들도 포용할 수 있는 관대함을 허락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스라엘을 침범하는 암몬의 라하스를 격파하게 하셨다.(삼상: 1-11)

거기까지만 보면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스리는 왕으로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을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는 성군이 되는 듯싶었다. 그러나 일단 왕으로서의 그의 지위가 확고해 지자 사울은 교만해져서 그의 힘과 능력을 믿고 하나님보다 그 자신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품에 거하며 그의 권능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모든 일을 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떠나신다는 귀한 진리를 사울 왕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마 10:33)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금하시는 일까지도 서슴없이 행하는 죄악을 저질렀다. 그가 왕위에 오른 지 2년 후에 숙적 블레셋이 전차 30,00대와 마병 6,000명과 해변의 모래처럼 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다. 엄청난 블레셋의 병력을 보고 전의를 상실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굴과 수풀과 바위틈이나 웅덩이를 찾아 숨어들거나, 요단강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도망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길갈에 머물러 있던 사울은 초조하게 사무엘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약속한 7일 안에 사무엘은 오지 않고, 백성들은 겁을 먹고 흩어지기 시작하자 사울은 번제와 화목제물로 제사를 드렸다. 

사울이 제사를 드린 후 도착한 사무엘은 “왕이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라 물었다. 사울이 길갈에 진을 친 블레셋 군의 위력 앞에 백성들은 무서워 떠는데 당신은 오지 않으니 할 수 없이 번제를 드렸다고 하자(삼상11:11-13), 사무엘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다”고 꾸짖고는 “그가 하나님께 불순종한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을 택해 그에게 이스라엘의 왕권을 넘기실 것이다”(삼상 13:13-14)라 들려준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버리셨다는 무서운 선고였다.

사람에 따라서는 숙적 블레셋 침략군을 맞이하여 불안에 떠는 백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사울 왕이 하나님께 직접 제사를 드린 것이 어째서 왕권까지 박탈당할 큰 잘못이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제사장만이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하나님의 법칙은 어리석은 자들이나 지키는 것이라 믿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지극히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사울이 급하다고 사무엘이 오기 전에 직접 번제를 드린 것은 죽음에 해당하는 크나큰 죄악이다. 웃사가 죽은 까닭을 생각하면 이 사실은 명백해진다.

아비나답의 집에 보관되어 있던 하나님의 궤를 옮길 때 법궤를 실은 수레를 끌던 소들이 비틀거리는 통에 법궤가 떨어지려 했다. 이를 본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재빨리 법궤를 붙잡았다. 하나님의 궤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웃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해서 한 일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궤는 제사장만이 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진로를 사서 죽었던 것이다. 웃사의 죽음은 하나님이 금하신 일을 행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자신의 신분과 위치를 망각하고 제자장만이 드릴 수 있는 번제를 드림으로 사무엘로부터 엄중한 문책을 받고 폐위를 선고 받은 후에도(삼상13:13-14) 사울 왕은 블레셋과 싸우노라 피곤하고 지친 병사들에게 금식령을 내리는 엄청난 과오를 범한다. 이로 인해 백성들이 적군에게서 빼앗은 짐승들을 잡아 피 채 먹는 죄악을 범했으니,(삼상14:32) 이 또한 독선과 교만으로 인해 사울이 범한 죄였다. 

사울의 범죄 행위는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모든 전리품을 박멸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살진 양과 송아지와 그 밖의 좋은 것들을 없애지 않고 자기가 취한 것이다. 이 또한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그가 원하는 대로 행한 죄악이었다. 그때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은 것도(삼상14:35)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그분의 뜻을 깨달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싸움에 이기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한 하나님의 눈에 가증스러운 위선에 불과했다.

그 후에도 사울은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오자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부끄러운 죄를 범했다. 숙적 블레셋이 막강한 병력을 동원하여 쳐들어오자 하나님께 그들을 물리칠 방안을 알려달라고 간구했지만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하자 한 밤 중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는 이스라엘 왕으로서는 범해서는 안될 추하고 어리석은 죄악을 저질은 것이다. 이처럼 사울은 신접한 여인의 도움을 얻어서라도 블레셋을 이겨보려고 발버둥 쳤지만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그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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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김대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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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8
잊을 수 없는 예배


 

미국서 목회하던 어느 날, 어떤 서양 여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어느 노인 아파트의 장로교인 모임의 총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다음 달 자기네 예배를 위하여 설교를 해줄 수 있겠느냐고 정중하게 물어왔다. 다른 교회나 기독교 단체로부터 설교나 세미나를 인도해 달라는 청탁은 여러 번 받아 보았지만 사적인 모임에 말씀을 전해달라는 부탁은 처음이기에 좀 자세히 물어보았다. 그녀는 그들이 살고 있는 노인 아파트의 장로교인끼리 매달 첫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데 11월에는 내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성찬식을 포함한 예배를 인도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었다.

11월 첫 주일 예배를 마친 우리 일행이 교회 버스로 약속된 곳에 가니 아파트 정문에서 여인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70이 넘은 여인들이었지만 곱게 단장한 그녀들은 50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2층 예배실은 규모가 좀 작다 뿐이지 보통 교회의 본당과 별다른 것 없이 엄숙하면서도 아담하고 청결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 곳에 30여 명의 여인들이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단상에 올라서 자세히 바라보니 그들은 모두가 정성 들여 몸단장을 했고(여인들의 치장에 둔한 내 눈에도 정성 들여 화장을 했음은 물론 그들 중 대부분이 미장원에 다녀온 흔적이 완연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젊게는(?) 70세로부터 93세에 이르는 할머니들이었지만 그들 모두 젊은 여인들 못지 않게 몸을 가꾸고 예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예배의 기본자세가 아닐 수 없었다.

미국 교회에 가서 예배를 인도할 때마다 우리말과 영어로 울려 펴지는 찬송을 들으며 한없는 은혜를 느끼곤 한다. 온갖 언어가 다 합해서 불러지는 천국음악을 듣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때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 교회 중창단과 그들 할머니 같은 여인들이 부르는 찬송을 들으며 인종과 연령을 초월하여 예수 안에서 한 가족 된 믿는 자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성찬예식을 거행하며 주님의 몸 된 떡을 떼며 그가 흘리신 피의 상징인 잔을 드는 의미를 설명하고, 주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럼 없이 살아가자고 했을 때 몇몇 여인들이 곱게 화장한 얼굴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볼 수 있었다.

설교는 열왕기하 5장 1절에서 14절까지를 본문으로 택하여 “우리의 사명”이란 제목으로 했다. 시리아의 군대장관 나아만 집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소녀는 참으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다. 만리타향에 포로로 잡혀와 고향으로 돌아갈 소망은 전혀 없는 가운데 매일 매일을 절망 가운데 지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고 문둥병에 걸린 주인 나아만 장군을 하나님께 인도함으로 선교사의 사명을 수행했음을 강조했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한 가련한 이스라엘 소녀가 이역 땅에서 그런 일을 했다면 여러분들의 지식과 능력과 인생경력과 영향력으로 얼마나 많은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자 그들은 아멘으로 화답했다.

예배 후 우리는 친교실에 안내되었다. 그들이 정성 들여 마련한 다과를 함께 들며 성도의 교제를 나눈 후 헤어질 때 나를 청빙한 총무가 하얀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사례비 같아 여러 번 사양했지만 자기네의 정성이니 받아달라는 간청을 물리칠 수 없어 받아서 아내에게 주었다. 오늘 수고한 중창단원들에게 주어 저녁이나 먹게 하라면서. 수표라면 서명을 해야 할 것 아니냐며 아내가 돌려준 봉투를 열어보니 정성 들여 쓴 감사 카드 속에 15불짜리 수표가 들어있었다.

순간 가슴 속에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의 물결이 파도침을 느꼈다. 목회를 시작한 이래 받는 사례비중 가장 적은 금액이며 찬양 팀의 저녁 식사비가 되기엔 어림도 없는 액수였지만 지금까지 받은 사례비 중 제일 큰 사랑과 정성이 담긴 것이었기 때문이다. 과부의 동전 두 개와 같은 그 귀한 사례비를 그 다음 주일 우리 교회에 감사헌금으로 바쳤다. 우리 교우들 중에서 이처럼 값진 예물을 주께 드리는 분들이 늘어날 것을 기도하면서 말이다. 그 날의 예배는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들의 마음을 기쁨과 감사로 충만케 한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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