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턴 소방구조대와 시 당국이 안전 규정 위반을 이유로 동남부 켄지워스(Kenilworth) 지역의 인필(Infill, 기존 주택지 내 재개발) 부지에 안전 명령(Safety Order)을 내렸습니다. 해당 부지의 기존 주택은 인근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 지난 주말 철거되었습니다. 주요 사건 및 갈등 내용 주민들의 반대 이유: 개발업체는 해당 부지에 3층 높이, 7가구 규모의 인필 아파트를 지을 계획입니다. 인근 주민들은 해당 건물이 동네 규모에 비해 너무 크고, 개발업체는 해당 부지에 3층 높이, 7가구 규모의 인필 아파트를 지을 계획시 당국에 정식으로 이의 신청(Appeal)을 제기했습니다. 안전 명령 발령: 철거 직전 시 당국과 소방구조대는 해당 부지에 대한 공식 안전 명령서를 펜스에 부착했습니다. 건물 일부가 제대로 밀폐되거나 고정되지 않아 화재 위험이 높고, 대중과 긴급 출동 대원들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유였습니다. 이 외에도 주민들은 철거 전 건축업자의 석면 처리 방식 및 현장 관리 부실 문제를 함께 지적했습니다. 건물주의 입장: 반면 개발업체(소유주)는 주변에 안전 펜스를 단단히 잠그고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어떤 안전 문제도 없었다며 시의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 주정부가 밴쿠버 다운타운 헬머켄가 900번지(900 Helmcken Street)에 개소할 예정이던 과량투여 예방 센터(OPS, 마약 안전투약소) 계획을 공식 취소했습니다. 주요 결정 내용 정부의 중단 지시: 새롭게 임명된 라비 칼론(Ravi Kahlon) BC주 보건부 장관은 밴쿠버 연안보건청(VCH)에 해당 프로젝트를 "중단(stand down)"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주정부는 이미 이 공간을 2년간 17만 9,000달러에 임대한 상태였으며, 앞으로 이 장소의 대안적 용도를 검토할 예정입니다. 지역 사회의 반발: 이 센터는 원래 문을 닫은 하우가(Howe Street) 시설을 대체하기 위해 올해 봄에 처음 발표되었으나, 지난 5월 무기한 잠정 중단되었습니다. 이번 최종 취소 결정은 치안 악화와 거리 무질서를 우려한 지역 기업인, 주민, 그리고 밴쿠버 시의회의 지속적인 반대 투쟁 끝에 내려졌습니다. 정치권의 반응: 켄 심(Ken Sim) 밴쿠버 시장은 이번 취소 결정을 공개적으로 환영하며, 공공 안전을 위해 목소리를 낸 주민들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심 시장은 앞으로 주정부와 협력해 예방 센터 대신 안전한 마약 치료 및 비자발적 입원 치료 시설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향후 과제: 헬머켄가 센터 계획은 폐기되었지만, 칼론 장관은 취약 계층을 보호하고 치명적인 마약 중독 사망을 줄이기 위해 밴쿠버시의 지속적인 협조와 책임 있는 노력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캐나다 전역에 걸친 기록적인 여름철 폭우로 인해 수많은 시민들의 휴가 및 야외 활동 계획이 무산되고 있습니다. [1] 기상학자 데이비드 필립스(David Phillips)에 따르면, 이번 여름 비가 내린 날수 자체가 대폭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기습적인 폭우성 폭설과 집중호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극심한 피해와 일정 취소를 야기했습니다. [1] 주요 지역별 기록 및 피해 현황 오타와 (Ottawa): 올여름에만 평년의 2.5배에 달하는 약 520mm의 누적 강수량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로 비가 많이 온 여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특히 캐나다 데이(Canada Day) 당일 폭우로 불꽃놀이가 취소되고 수천 가구의 지하실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에드먼턴 (Edmonton): 평년 계절 평균(213mm)의 두 배가 넘는 562mm의 대폭우가 쏟아지며 1953년의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주거지 침수 및 도로 함몰(싱크홀) 등의 피해가 잇달았습니다. 토론토 및 남부 온타리오: 8월 말 주말에도 토론토 도심과 근교 휴양지(Cottage Country)를 중심으로 최대 50mm 이상의 국지성 호우가 예보되어, 캐나다 국립 박람회(CNE)나 대형 콘서트 등 야외 축제를 찾은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나이아가라 지역: 7월과 8월 사이 3개 이상의 대형 폭우 시스템이 연달아 정체하면서, 도시 배수 용량을 초과해 세인트캐서린스 등지에서 수천 채의 주택이 침수 피해를 입었습니다. 긍정적인 반전 (산불 위험 감소) 불행 중 다행으로, 6월과 7월 내내 이어진 기록적인 강수 덕분에 앨버타주 등의 토양 수분량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유지되었습니다. 그 결과 최근 40년 만에 처음으로 8월 중 단 한 건의 활성 산불도 발생하지 않는 기조를 보였습니다
▶ 에드먼턴의 EPCOR가 외래 침입 어종을 제거하기 위해 South Terwillegar지역의 stormwater ponds 3곳을 방제 이번 주부터 에드먼턴의 EPCOR가 외래 침입 어종을 제거하기 위해 사우스 터윌리거(South Terwillegar) 지역의 우수관당(stormwater ponds) 3곳을 방제합니다. 주요 방제 정보 목표 어종: 번식력이 매우 강한 프러시안 잉어(Prussian carp)와 금붕어가 대상입니다. 이 외래종들은 토착종의 자원을 빼앗고 노스 사스카처원 강(North Saskatchewan River) 등 자연 수계를 교란해 생태계를 위협합니다. 위치 및 일정: 이번 주 화요일 사우스 터윌리거 제5지(Pond V)(Speaker Way NW와 Sandin Cove NW 사이)부터 방제를 시작합니다. 제2지와 제3지는 날씨가 허락한다면 다음 주에 진행됩니다. 세 곳 모두 약 3주 후에 2차 방제를 거치게 됩니다. 제거 방법: 앨버타 주정부의 승인을 받은 천연 화합물인 로테논(rotenone)을 사용합니다. 이 물질은 열대 식물의 뿌리에서 추출한 것으로, 아가미로 호흡하는 동물에게만 작용하며 다른 야생 동물에게는 해가 없습니다. 이번 방제 작업은 관련 법적 요구 사항을 따르는 생태계 관리 전략의 일환입니다 CTV News https://www.youtube.com/@ctvnews CTV News is Canada's most-watched news organization both locally and nationally, and has a network of national, international, and local news operations.
▶ 캐나다와 미국간의 무역 협상이 결렬. 캐나다 국산품 이커머스 플랫폼인Common Goods’의 웹사이트 트래픽과 매출이 주말 사이 300% 급증 캐나다와 미국 간의 무역 협상이 결렬되고 캐나다 측 대표단이 협상 테이블을 떠난 직후, 캐나다 국산품 이커머스 플랫폼인 ‘커먼 굿즈(Common Goods)’의 웹사이트 트래픽과 매출이 주말 사이 300% 급증했습니다 (1:53). 창업 배경 및 성장 과정 창업 계기: 창업자 발레리 크리스프(Valerie Crisp)는 약 18개월 전 미국의 1차 관세 부과 당시 캐나다 국산품을 소비하려는 움직임이 온라인에서 크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0:06). 틱톡을 통한 검증: 사업성 검증을 위해 올린 틱톡 영상 하나로 단 일주일 만에 1만 명의 대기자 명단(웨이트리스트)을 확보했습니다 (0:40). 공식 출시: 이러한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약 1년 전 ‘커먼 굿즈’ 플랫폼의 첫 버전을 공식 론칭했습니다 (0:52). 인프라 구축: 열정만 가득하고 판매할 상품이 적었던 18개월 전과 달리, 현재는 입점 업체 및 판매 인프라가 완벽히 구축되어 있어 이번과 같은 폭발적인 수요 급증에도 안정적인 대응이 가능해졌습니다 (2:15). 소비자 구매 트렌드 인기 검색 필터: 플랫폼 내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필터 1위는 '메이드 인 캐나다(Made in Canada)'입니다 (2:55). 의류 카테고리 강세: 특히 캐나다의 대형 백화점 체인인 ‘더 베이(The Bay)’가 폐업하면서, 국산 의류 브랜드를 찾으려는 소비자들의 유입이 의류 카테고리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2:49). 대표적인 인기 브랜드: BC주 밴쿠버 섬에 기반을 둔 ‘킨드레드 코스트(Kindred Coast)’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3:07). 이 업체는 캐나다 현지에서 원단을 짜고 재단 및 봉제까지 모두 마친 고품질 티셔츠를 약 40달러에 판매하며 일상적인 국산품 소비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3:07)
토론토 다운타운 모스 파크(Moss Park) 인근에서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면서 전력선과 전차 전선을 덮쳐 전력 공급이 중단되고 도로가 전면 폐쇄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사고는 2026년 8월 24일 월요일 오전 6시 40분경, 던다스 스트리트 이스트(Dundas Street East)와 셔본 스트리트(Sherbourne Street) 교차로 인근에서 발생했습니다. 무너진 나무가 도로와 TTC 노면전차(트램) 선로를 완전히 가로막았으며, 가공 전선과 접촉하면서 한때 약간의 연기가 피어오르기도 했습니다. 도로 통제 및 교통 상황 전면 폐쇄 구간: 토론토 경찰(TPS)과 토론토 소방청(TFS)은 안전을 위해 시튼 스트리트(Seaton Street)부터 셔본 스트리트 사이의 던다스 스트리트 구간을 양방향 전면 통제했습니다. 운전자 당부: 복구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해당 구간의 통행이 불가능하므로, 경찰은 운전자들에게 이 지역을 우회해 통행해 줄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습니다. 대중교통(TTC) 우회 및 지연 이번 사고로 전차를 움직이는 대공 전선이 끊어지면서 출근길 대중교통 운행에 큰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노선 우회: 505번 던다스(Dundas) 및 506번 칼턴(Carlton) 노면전차가 해당 구간을 지나지 못하고 다른 경로로 우회 운행 중입니다. 스파다이나 애비뉴, 킹 스트리트, 퀸 스트리트, 브로드뷰 애비뉴 등으로 우회 조치되었습니다. 복구 전망: TTC(토론토 대중교통위원회) 측은 시 정부가 쓰러진 나무를 완전히 치워야만 전선 수리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복구 및 안전 테스트 작업은 밤늦게나 다음 날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화요일 아침 출근길 전까지 정상 운행 재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1, 2, 3] 피해 복구 현황 토론토 하이드로(Toronto Hydro)와 시청 임업과 직원들이 현장에 긴급 출동해 끊어진 전선 복구 및 나무 제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몇 가구가 정전 피해를 입었는지와 정확한 도로 재개통 시점은 아직 공식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시 당부 사항에 따라, 주민들은 인근의 위험한 나무나 부러진 가지를 발견하면 즉시 311로 신고해야 합니다.
CTV News Kitchener 리포트에 따르면, 워터루의 한 주택 외벽에 배송 기사가 유성 매직으로 주소를 낙서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으며, 프리클턴 인근 6번 고속도로(Highway 6)에서는 대형 트럭 추돌 사고가 발생해 도로가 몇 시간 동안 전면 통제되었습니다. 1. 워터루 주택 외벽 '유성 매직 낙서' 사건 워터루(Waterloo)에 거주하는 주택 소유주 제프 오언(Jeff Owen)은 약 두 달 전 아마존을 통해 주문한 택배를 배송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집 외벽이 훼손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건 경위: 오언의 가족은 이 집에서 약 4년 동안 거주해 왔으나, 주택 전면에 별도의 물리적인 '지번(숫자)'을 표시해 두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은 배송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당일 방문한 한 택배 배송 기사가 집 주소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주택 외벽에 유성 매직(Permanent marker)으로 주소 숫자를 크게 적어놓고 가버렸습니다. 주민 반응: 피해 주민은 누군가 이 황당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외벽을 원상복구(make things right)해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1, 2] 전문가 조언: CTV News의 카리스 맵(Karis Mapp) 기자가 보도한 이 사건에 대해, 취재진은 오배송이나 배송 기사와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주택 전면에 멀리서도 식별 가능한 명확한 문패나 지번 숫자를 부착해 두는 것이 안전하다고 당부했습니다. [1, 2] 2. 프리클턴 6번 고속도로(Highway 6) 대형 트럭 추돌 및 폐쇄 사고 프리클턴(Freelton) 인근 6번 고속도로에서 강철을 싣고 가던 대형 트레일러 트럭이 공사 구간 장벽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해 출퇴근길 극심한 교통 정체가 빚어졌습니다. 사건 발생: 8월 24일 새벽 4시경, 콘세션 로드 12 이스트(Concession Road 12 East) 인근 북쪽 방향 차로를 달리던 강철 수송 트럭이 공사 구역 콘크리트 장벽을 1차로 충돌했습니다. 사고 규모: 충격의 여파로 트럭은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남쪽 방향 차로의 콘크리트 장벽까지 연이어 들이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트럭의 디젤 연료가 도로와 인근 도랑(Ditch)으로 다량 유출되었습니다. 대응 및 피해 상황: 온타리오 주정부 경찰(OPP)과 온타리오 환경부(Ministry of Environment)가 긴급 출동하여 오염된 토양을 파내고 파손된 콘크리트 장벽을 교체하는 복구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으며 다른 차량과의 충돌도 없었으나, 방대한 청소 작업으로 인해 오후 7시 넘어서까지 고속도로 양방향 전 차로가 폐쇄되었습니다.
킹스턴 배라크 스트리트 부두(Barrack St Dock)에서 기존 노후화된 울프 아일랜드(Wolfe Island) 페리 터미널 건물을 철거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공사는 지난 2026년 August 10일 신축 페리 터미널 건물이 대중에게 공식 개방된 데 따른 후속 조치입니다. 새로운 터미널로의 이전 및 운영이 정상 궤도에 오르면서, 공사 구역 확보와 부두 확장을 위해 기존 건물의 해체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주요 철거 및 공사 진행 현황 현장 드론 및 4K 카메라를 통해 업데이트된 최근 공사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철거 전문 업체 투입: 국내 최고의 철거 전문 기업인 **프리스트리 데몰리션(Priestly Demolition)**이 해체 마스터로 참여해 매우 통제되고 안전한 방식으로 구 터미널 건물을 철거하고 있습니다. 철거 일정: 기존 건물 해체는 앞으로 최소 1~2주일 동안 계속 이어질 전망입니다. 친환경 시스템 분리: 철거 초반 작업의 일환으로 에어컨 냉매 가스 및 가스액(Air conditioning fluids)을 시스템에서 안전하게 빼내어 처리하는 환경 안전 작업을 먼저 마쳤습니다. 기초 하부 토목 공사 완료: 토목 전문 기업인 **SBC(Soletanche-Bachy Canada)**가 부두 확장을 위한 널말뚝(Sheet piling) 설치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향후 공사 계획 단계 구 터미널 건물의 철거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 킹스턴 부두 확장 및 기반 시설 조성을 위한 다음 단계 공사가 곧바로 시작됩니다: 해머링 종료 및 시추 전환: 다음 공정 단계에서는 소음이 심한 해머링(망치질) 작업 없이, 대형 케이슨(Caissons)과 구조물 고정을 위한 대규모 시추(Drilling) 공정으로 전면 전환될 예정입니다. Tx 크레인 재배치: 새로운 운영 단계 준비를 위해 부두 확장 구역에 배치된 대형 Tx 크레인 중 한 대를 재배치하는 구성 작업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미래 램프(Ramp) 구축: 현재 철거 부지 바로 옆에서는 미래에 페리가 접안할 배후 램프의 옹벽(Back wall) 형성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토론토에 거주하는 한 여성이 중동 지역 갈등으로 인해 비행기가 취소되면서 받지 못하고 있던 약 10,000달러(정확히 9,934달러)의 여행 경비 전액을 CTV News의 취재와 개입 덕분에 마침내 환불받았습니다. 비비안(Vivien)이라는 이름의 이 여성과 그녀의 남편은 결혼기념일을 맞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와 몰디브로 향하는 기념 여행을 계획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륙을 위해 비행기 안에 탑승해 있던 순간 중동 지역에 갑작스러운 전쟁(갈등)이 발발했고, 아부다비 영공이 전면 폐쇄되면서 항공편이 취소되었습니다. 항공사였던 에티하드 항공(Etihad Airways)은 약 10,000달러 상당의 왕복 항공권에 대해 전액 환불을 승인했으나, 제3자 예약 대행 사이트인 **익스피디아(Expedia)**를 통해 예약이 진행되었던 탓에 환불금이 수개월 동안 중간에 묶여 유령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건의 주요 경위 및 문제점 영공 폐쇄로 인한 취소: 중동 분쟁으로 아부다비 영공이 닫히며 부부가 탑승한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취소되었습니다. 예약 대행 사이트의 오류: 에티하드 항공은 익스피디아 측으로 환불 대금을 즉시 넘겼고 비비안은 4~8주 안에 돈을 돌려받을 것이라 안내받았으나, 몇 달이 지나도 환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서류 제출: CTV News의 소비자 권리 전문 기자인 팻 포란(Pat Foran)이 직접 익스피디아 측에 조사를 의뢰한 결과, 익스피디아 내부에서 최초 환불 요청서가 항공사에 잘못 접수되는 행정적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최종 해결 결과 익스피디아 대변인은 공식 사과와 함께 문제를 시정하여 9,934달러의 결제 대금 전액을 즉시 환불 조치했습니다. 이에 더해 오랜 기간 겪은 불편에 대한 보상 차원으로 400달러의 익스피디아 여행 크레딧을 부부에게 추가 제공했습니다. 팻 포란 기자는 이번 사건을 전하며 "제3자 대행 웹사이트를 이용할 경우 환불이나 일정 변경 시 소비자가 중간에 끼어 소통의 피해를 보기 쉽다"며, "가능하면 항공사나 호텔에 **직접 예약(Direct Booking)**하는 것이 추후 환불을 받거나 일정을 변경할 때 훨씬 수월하다"는 소비자 주의 사항을 덧붙였습니다.
마크 카니(Mark Carney) 캐나다 총리가 캐나다 해안경비대용 신형 '폴라 클래스 3(Polar Class 3)' 쇄빙선 6척을 건조하는 113억 달러(약 11조 원) 규모의 계약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퀘벡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조선업 프로젝트입니다. 카니 총리는 퀘벡주 레비(Levis)에 있는 샹티에 다비(Chantier Davie) 조선소에서 크리스틴 프레셰트(Christine Frechette) 퀘벡주 총리와 함께 이 역사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카니 총리는 이번 투자를 미국과의 무역 협상 결렬 및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위협에 맞서 캐나다의 경제 주권을 지키기 위한 핵심적인 방어 조치로 규정했습니다. 계약 및 건조 계획 핵심 내용 이번 다년도 연방 조달 계약은 전량 캐나다 국내 생산 원칙에 따라 노후화된 해양 선단을 완전히 개편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쇄빙선 선단 구축: 해안경비대의 노후된 대형 및 중형 선박을 대체할 프로그램 쇄빙선 6척을 건조합니다. 추진 일정: 사업이 신속하게 진행되어 2027년 가을 첫 캐나다산 강철 절단(착공)에 들어가며, 5년 후 첫 선박이 실전 배치됩니다. 최종적으로 2038년까지 전체 선단 구축을 완료할 예정입니다. '바이 캐나다(Buy Canadian)' 원칙: 6척의 쇄빙선은 모두 레비 조선소에서 건조되어야 하며, 오직 캐나다산 강철과 자재만을 사용해야 합니다. 경제 및 고용 효과: 이 프로젝트는 핵심 건조 기간 동안 용접공과 기술자 등을 포함해 5,000개의 일자리를 유지하고, 캐나다 GDP에 매년 약 6억 5,000만 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주요 작전 및 임무 범위 새로운 폴라 클래스 3 쇄빙선은 캐나다 국내 해상 수송로를 연중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겨울철 임무: 겨울철 성수기 동안 대서양 연안 캐나다 지역과 세인트로렌스강(St. Lawrence River)의 얼음을 깨고 상업용 선박의 통항을 지원합니다. 여름철 임무: 북극 심해 지역에서 북방 물자 보급, 수색 및 구조, 해양 환경 대응, 과학 연구 등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지정학적 및 무역 협상 카드 활용 카니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과의 불리한 무역 협상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완강한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특히 현재 심각한 쇄빙선 부족을 겪고 있는 미국을 돕기 위해 2024년 캐나다, 핀란드, 미국이 맺었던 3국 간 'ICE 팩트(ICE Pact)'의 미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카니 총리는 워싱턴을 향해 미국이 북쪽 이웃 나라인 캐나다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뼈있는 일침을 날렸습니다. 카니 총리는 ICE 팩트가 "미국이 캐나다로부터 절실히 필요로 하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꼬집으며, 캐나다는 앞으로도 미국과 파트너십을 맺을 용의가 있지만 그것은 오직 "캐나다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조건이어야만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 포드 총리는 트럼프를 "독재자", "약자나 괴롭히는 야비한 사람"이라고 맹비난,"내 엉덩이에 키스나 하라"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발생한 미-캐나다 무역 전쟁 속에서, 더그 포드(Doug Ford) 온타리오주 총리가 트럼프를 향해 "내 엉덩이에 키스나 하라(kiss my ass)"고 했던 자신의 거친 발언을 재차 강조하며 정면 돌파에 나섰습니다. 포드 총리는 트럼프를 "독재자", "약자나 괴롭히는 야비한 사람(bully)"이라고 맹비난했습니다. 양국 간의 무역 협상이 결렬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280억 달러 규모의 캐나다산 제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2027년 1월 1일까지 캐나다산 자동차와 철강 전체에 50%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위협했습니다. 포드 총리가 토론토 라디오 방송에서 이를 처음 비판하자, 트럼프는 자신의 SNS인 트루스 소셜에 포드 총리를 마크 카니(Mark Carney) 캐나다 총리의 "하수인(flunky)"이라 부르고, 그의 고인이 된 형 롭 포드(Rob Ford)와 비교하며 비하했습니다. 이에 포드 총리는 해밀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물러서지 않고, 트럼프를 학교 운동장에서 점심값을 뺏는 불량배 같은 "패배자(loser)"라고 맞받아쳤습니다. 온타리오주의 경제적 대응 조치 포드 총리는 2026년 8월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 관세로 타격을 입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주 정부 차원의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금융 지원 확대: 관세 피해를 입은 플라스틱, 제지, 포장, 가구, 주류 제조업체들이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온타리오 보호(Protect Ontario)'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즉시 확대합니다. 미국산 주류 판매 금지: 온타리오 주류판매위원회(LCBO) 매장에서 미국산 술을 계속 퇴출할 것이라 확인했으며, 무역 양보의 일환으로 이를 철회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조달 시장 제한: 연간 20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온타리오주 정부의 공공 조달 권한을 활용해, 미국 기업들이 주의 인프라 사업 입찰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계약 취소: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Starlink)와 맺은 1억 달러 규모의 주 정부 계약을 포함해, 미국 대기업들과의 주요 기술 협약을 취소합니다. 직접적인 에너지 보복 경고 포드 총리는 미국 워싱턴 정부가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온타리오주의 에너지 인프라를 무기화해 미국이 "고통을 느끼게"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전력 수출 할증료: 뉴욕, 미시간, 미네소타 등 국경을 맞댄 미국 주(州)로 보내는 전력에 25%의 수출 할증료를 다시 도입합니다. 전력 공급 중단: 미국 남부로 향하는 온타리오주의 전력망과 핵심 광물 공급망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다고 위협했습니다. 국가 전략 비축유: 캐나다 정부가 앨버타주의 석유를 매입해 국내 전략 비축유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서부 지역 주 총리들에게도 단결을 촉구했습니다. 연방 정부를 향한 요구 사항 포드 총리는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 타협하지 않고 협상장을 걸어 나온 마크 카니 총리의 결단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캐나다 산업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연방 정부가 국내 규제를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폐지: 캐나다산 자동차의 제조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방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 기준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산업 분야 규제 면제: 관세 타격을 입은 업종에 한해 연방 배출량 기준 적용을 면제해 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표적 맞보복 관세: 오는 9월 8일로 예정된 캐나다의 "달러 대 달러" 맞보복 관세를 트럼프 행정부에 정치적 타격을 줄 수 있는 미국의 '골수 공화당 지지 지역(deep red states)'에 집중 배치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Dr. Schofield 의 일대기 Frank W. Schofield는 3·1 운동의 제 34인으로 불리던 인물로 국립묘지에 최초에 묻힌 외국인이며, 대한민국 문화헌장을 3번째로 수상하였다. 그는 세브란스 의학전문 학교에서 세균학자로 재직하던 당시 일제의 조선에 대한 만행을 외국에 고발하고,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글을 각 나라 신문에 투고하였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를 매우 사랑하고 독립을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던 인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여기서 그를 소개하는가. 그는 바로 세계적인 '수의학자'였고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의 교수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병리학 강의를 맡았으며 지금도 수의대 구관 2층에는 문화훈장을 단 그의 사진이 걸려 있다. Frank W. Schofield는 1889년 3월 15일 영국 Warwickshire주 Rugby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Frank를 낳고 산욕열로 돌아가셔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Francis W. Schofield로 대단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신학자였고 Cliffe College에서 신약성서와 희랍어 강의를 하였다. 당시 Frank W. Schofield의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따 Francis W. Schofield Junior였고 나중에 이름을 Frank로 바꾸었다. 그에게는 누나 Mary와 맏형 John, 둘째 형 Stephen이 있다. 그의 어린 시절이 다른 유명한 위인들처럼 대단했던 것은 아니다. 장난꾸러기로 동네에서 이름을 날렸으며, 대학을 진학할 당시에는 집안의 형편도 나쁘고 또 후원자가 생길 만큼 공부를 잘하지도 않아서 대학진학을 포기했어야 했다. 그의 형들과 누나는 각자 후원자를 얻어 런던대학교 의과, 건축학과에 진학했다. 그 후 Frank W. Schofield는 스스로 돈을 벌어 대학에 진학할 뜻을 가지고 농장과 목장 등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당시 영국은 자본주의 체제가 확립되던 당시여서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차가웠고 결국 아무리 일을 해도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벌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자유와 일할 자리, 그리고 공부할 곳을 찾아 Canada의 한 농장에서 반년을 일하자 대학에 들어갈 만큼의 돈을 얻게 되었고, 그는 Toronto 대학교 Ontario 수의과대학에 입학한다. 그가 수의과대학에 입학한 것은 목장 생활 중 수의사가 목장의 말을 치료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상당히 힘들게 시작한 대학 공부였지만 그는 뜻하지 않은 불행을 겪게 된다. 대학 2학년 때 소아마비에 걸린 것이다. 그 후 그는 왼팔과 오른 다리가 평생 마비된 상태로 살아야 했다. 하지만 Frank W. Schofield는 더욱 공부에 매진해 1910년 공동수석으로 졸업했고 이후 Ontario주 보건국 세균학 연구소의 조수로 취직한다. 1년 정도의 조수 생활동안 그는 Toronto 시내에서 판매되는 우유의 세균학적 검사를 실시하여 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고, 이 논문으로 1911년 수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1913년에는 Alice Schofield와 결혼하였고 이 때 그의 나이 24세였다. 1914년 그는 Onterio 수의과대학 세균학 강사가 된다. 그리고 그 해 7월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한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16년 한국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 교장 Avison 박사가 쓴 한 통의 편지에 의해서이다. Avison 박사의 편지는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에서 세균학 강의를 맡아줄 사람을 찾고 있으며, 세브란스는 선교사업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헌신적이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를 찾는데 Frank W. Schofield가 가장 적합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Frank W. Schofield는 1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 불편한 몸 때문에 전쟁에 참가하지 못한 것을 항상 죄스럽게 생각하던 터라, 인류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으로 떠날 것을 결정하였다. 그 다음 해 8월 초 Frank W. Schofield 나이 28세 때 아내와 함께 한국으로 출발하여 10월 한국에 도착한다. 서울에 도착한 후에 세브란스 의학전문 학교에서 세균학과 위생학을 강의하며 목원홍씨에게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는 한국에 도착한지 1년 후 '선교사 자격 획득 한국어 시험'에 합격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한국식 이름도 만들었는데, 바로 '석호필(石虎弼)'이다 그의 성인 '石'은 그의 종교적 굳은 의지를 의미하고, '虎'는 호랑이, '弼'은 돕는다는 뜻으로 한국인을 돕겠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한국 생활 적응은 순조로왔지만, 그의 아내는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하여 만삭의 몸으로 다시 Canada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Schofield는 혼자 남아 선교사업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선교 사업과 관련하여 각계 인사와 친분을 나누던 그는 당시 기독교 청년회장이던 독립운동가 이상재 선생, 최초의 사설재단인 정화학교 설립자인 김성혜 여사와 특히 두터운 친분을 쌓는다. 그리고 일찍 어머니를 여인 그는 김정혜 여사를 수양어머니로 삼는다. 1919년 2월 5일 이갑성씨 부탁으로 독립운동 준비를 위한 일을 맡게 되는데 그가 맡은 일은 국제사정을 알려주는 일이였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정보를 독립운동가에게 알려준 것도 바로 그다. 자신이 일본과 친교가 있던 영국인이라는 유리한 입장을 내세워 3·1 운동을 위한 세세한 준비를 뒤에서 도운 그는,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만세시위를 하는 민중들과 일제의 시위자에 대한 만행을 사진으로 찍고, 글로 적어 해외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3·1 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일어난 4월 제암리 사건 당시 Schofield는 수원으로 가 사진촬영을 하고 <제암리/수촌리에서의 잔학 행위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5월 일본인이 운영하는 영자신문 'Seoul Press' 지에 서대문 형무소에 대한 글을 올리고 당시 노순경, 유관순, 어윤희, 엄영애 등이 갇혀있던 서대문 형무소를 직접 방문한다. 이후 그가 근무하던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에는 일제의 압력이 가해졌고 그 역시 학교 당국으로부터 조선 독립에 대한 노력을 자제할 것을 당부 받는다. 그러나 그는 1919년 9월 일본에서 열린 <극동 지구 파견 기독교 선교사 전체회의>에 참석하여 한국의 실정을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알리는 발표를 하게 된다. 일본에 머무는 동안 일본 유명인사와 만나면 일본의 비인도적 행위를 시정할 것을 요구하는 등의 일을 한다. 1920년 자신이 쓴 [끌 수 없는 불꽃 - Unquenchable fire]라는 3·1운동 목격기를 해외로 가지고 나가려고 하던 Schofield는 출국 전 강도로 가장한 암살미수를 당한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끌 수 없는 불꽃]은 해외로 가지고 나갔으나 결국 출판은 할 수 없었다. 이는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두려워한 나라나 출판사들이 출판을 꺼려했기 때문이며, Schofield는 [끌 수 없는 불꽃]의 일부분만을 강연회나 잡지 등에 투고할 수 있었다. 고국으로 돌아간 그는 1921년부터 Toronto 병원에서 근무하게되고 곧 대학에 복직한다. Schofield는 이때부터 67세가 될 때까지 계속 이 대학과 병원에서 근무하게 된다. 그가 한국에 있는 동안 아내 Alice는 실성하여 Schofield가 Canada에 돌아왔을 때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의 아들 Frank Junior는 네 살이었다. 아내의 병원비를 대랴, 아이를 혼자 양육하라 매우 힘든 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Schofield 박사는 매달 월급의 1/3을 떼어 10년 계획으로 다시 한 번 한국에 갈 비용을 마련한다. 그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귀국 6년만(당시 38세)에 다시 한국에 갈 여비를 마련하고 곧 1926년 5월 초 한국으로 출발, 23일 서울역에 도착했고, 7월 그는 다시 한국을 떠난다. 1955년 그가 재직 중인 대학을 건강상의 문제로 그만두자 대한민국 정부는 그를 국빈으로 맞겠다고 연락을 했다. 1957년 그의 아내(당시 72세)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은 Canada의 민간 항공 조종사로 일하게 되자 1958년 한국으로 갈 뜻을 비추었다. 그러자 대한민국 정부는 광복 13주 기념일 및 정부수립 10주년 경축 식전에 국빈으로 그를 초빙했고 8월 초 Canada를 출발한 그는 14일 김포국제 공항에 도착한다. 당시 한국의 상황은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고 농촌생활은 허탈했으며 거리는 전쟁고아로 가득 찬 시기였다. 한국에 온 그는 8월 20일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을 방문하고 이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뜻을 보였고 당시 학장이던 이영소 교수와 총장 윤일선 박사의 동의로 서울대학교 외인숙사에 방을 얻는다. 같은 해 9월초부터 그는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수의병리학을 강의하며 연세대 의과대학과 중앙대 약학대에서 강좌를 갖고 다른 대학에서도 강의를 시작한다. 그는 학교에 있으면서 50여명의 학생을 자신의 사비로 장학금을 만들어서 도왔으며 유학희망자들에게는 외국 대학의 장학금을 구해주고 적당한 일자리를 구해주는 등의 배려를 해 주었다. 10월 2일 경향신문에 를 통해 발전된 한국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 그는 과거 한국에 있던 시절 지인들이 운영하는 전쟁고아를 위한 유린 보육원과 봉은 보육원을 Canada, 미국, 유럽의 수의사친구들을 통해 도와주었으며 그 해 일어났던 <2·4 정치파동> 즉 국가보안법을 강행으로 통과시킨 일에 대해 1959년 1월 3일 한국일보 1면에 [1919년을 회상케하다]라는 글을 써 이승만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정치적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Canada에서의 일들을 정리하고 한국에 영주하기 위해 5월 초 Canada로 돌아간 그는 9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동안 그의 친구들은 운영본부를 미국 Missouri주 Kansas시의 월간잡지 'Veterinary Medicine' 본사에 둔 'The Schofield Fund,'를 설립했다. 또한 한국에서 그는 연구활동도 열심히 하여 돼지 위축성 비염에 대한 논문을 써 미국 수의학회지에 발표했다. 이승만 정권은 1959년 초부터 공공연한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을 해오던 박사에 대한 압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4월 신학기에는 대학에서의 강의를 반정부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명목으로 중지시키고 그와 친한 사람들을 위협하고 그의 거처인 4평짜리 외인숙사를 비우라고 통고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1960년 4월 19일 학생들의 시위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자 이후 새 민주당정권은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12월 17일, 대한민국 수립 후 3번째로 박사에게 수여하였으며 서울특별시에서는 <서울특별시 행운의 열쇠>를 박사에게 증정하였다. 또, 그는 61년 1월 한국일보에 <내가 본 한국혁명>이라는 4·19 목격기를 실었고, 같은 해 5·16이 일어나자 6월 영자신문 'Korean Republic'에 <5·16 군사혁명에 대한 나의 견해>를 투고하였으며 그는 여기에서 5·16은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한국사회에서 필요불가결한 혁명이라 결론 짓고 이 혁명은 한국의 번영을 위한 '마지막 희망이자 기회'라고 강조했다. 또 Canada의 Guelph시의 'Daily Mercury'지에 한국의 군사혁명을 소개했다. 그동안 한국의 제자들과 함께 [고양이 폐에의 Paragonimus의 침범], [창경원 동물원 꿩에 발생한 New-castle disease], [전염성 고양이 간염], [한국소의 Globidiosis의 병리조직학적 연구], [돼지의 Pasteurella multocida에 기인하는 급성소염성 폐렴]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수의학자였다. Ontario 대학에서 수의 병리학 교실의 정교수로 일했으며 독일 Munchen의 Ludwig Maximilian Univ.에서 명예 수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수의학회 연례회의 <국제수의학회상> 12번째 수혜자였으며 Canada의 프랑스계 수의학 협회로부터 를 받았다. 또 Toronto 대학의 개교 기념 100주년 기념식에서 명예 법학박사, 경북대학교 명예 수의학박사, 고려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서울대학교 명예 수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수의과대학 병리학협의회의 공로회원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그의 유명한 업적으로는 [외관상으로 출혈성패혈증과 기종저처럼 보이는 새로운 소 질병의 원인체인 Sweet Clover]라는 논문에서 소의 사료로 쓰이는 부패한 Sweet Clover에 Cumarin이라는 혈액응고 방지성 물질을 밝혀내어 지금도 쓰이고 있는 살서제 Warfarin과 혈액응고 방지제 Dicumarol의 원료로 쓰이고 있다. Schofield 박사는 1970년 4월 16일 국립 중앙의료원에서 영면하셨다. 사실 그의 한국 체류기간은 그리 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동안 그가 보여준 한국을 위한 일이라든가, 한국 땅에 묻히기 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것을 보면 그의 업적이 얼마나 훌륭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많은 학생을 도왔음에도 지금 그를 기념하는 행사 하나 열리지 않고 있다. 다음 글은 Schofield의 아버지 Francis William Schofield, Sr.이 항상 자신의 아이들에게 하던 말로 Schofield 박사의 인생관이었다. 『인생에는 두 길이 있다.: 배려의 길과 기도의 길이다. 배려의 생활은 환경의 압력에서 힘을 얻고, 상식을 그 인도자로 삼고, 행로의 불측을 각오하며, 항시 염려를 동반자로 한다. 기도의 생활은 사랑을 힘으로, 하나님을 인도자로, 진리를 행로로, 신의 평화를 무적의 수호로 삼는다.』 『There are two ways through life : the way of care and the way of prayer. The way of care has pressure of circumstances for its force, common sense for its guide, uncertainty for its path, fear for its attendant and guard. The way of prayer has love for its force, the Spirit of God for its guide, truth for its path, and the Peace of God for its inviable guard.』 참조 문헌 : 한국 땅에 묻히리라 <이장락 지음(정음사)>, 글 : '96학번 이지해
늙지않는 방법 10가지 노화란 무엇인가? 인간이 수정으로부터 시작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생체변화다 다시말해 노화란 성숙기 이후에 생기는 변화로 개체의 생존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이다. 늙지 않는 방법 01. 칼로리 섭취를 절반으로 줄인다. <鶴의 胃는 항시 절반만> 02. 열을 가해조리한 음식을 가능한 삼가고 - 단순한 재료를 단순하게 조리하여 적당량만 먹는다. 03. 물을 매일 2,000 cc 정도 마신다. - 사람다운 체형 유지 - 식사전 30분, 식후 2시간에 마신다. - 취침전. 취침후에 꼭마신다 04. 매일 1시간정도 걷는다. - 다리는 제2의 심장이라고 한다. 노화는 다리로부터 온다. - 시선은 15 도 상단을 보고 걷는다. - 땅을보고 걸으면 다리가 벌어진다 <중년이후 보기 흉해> 05. 호흡을 깊게 서서히 고요히 한다. 06. 무리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 - 과도한 운동은 수명단축, - 무리한 유산소 운동은 활성산소(세포毒)이 생겨 세포에 악영향 07. 즐겁게 살며 보람을 갖는다. -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다. - 현명한 이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것 -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을 발견하는 것 -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 세상를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으므로 해서 -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08. 항상 타인과 사귄다. -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므로 타인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다양한 자극이 되어 생명력을 높인다. - 적당한 SEX 도 효과적인 不老術이다. 09. 적당한 취미 생활을 한다. 10. 자신에게 맞는 약제를 구입 복용한다. - 延年 益壽 開心 益智, 건망증 및 불노환 등 관련 약초가 있다 - 식초를 물에 타서 자주 먹으면 血栓症(혈액이 막히는증세) 예방과 지방분해로 인해 혈액순환이 잘되고, 위 3 항의 물먹기를 몇개월 실천하면 아침에 누는 소변에 냄새가 없어지기도 하여 좋다고 한다. ☞출처 : 신선한 아침바람을 쐬는 기분처럼!
캐나다 온타리오주 남서부에 위치한 런던(London)은 토론토와 디트로이트의 중간 지점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약 45만 명의 대도시권 인구를 보유한 중심 도시입니다. 영국의 런던을 본떠 만든 이름 덕분에 도시를 가로지르는 템스강(Thames River)이 흐르며, 도심 곳곳에 나무가 많아 '숲의 도시(The Forest City)'라는 아름다운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요 교육 및 인프라 웨스턴 대학교: 캐나다 최고의 명문 대학 중 하나인 University of Western Ontario가 위치해 있어 젊고 활기찬 대학 도시의 분위기를 풍깁니다. 의료 및 산업: 대형 병원들이 밀접한 지역 의료의 중심지이며, 자동차 제조업 등 산업도 함께 발달해 있습니다. 한인 커뮤니티: 광역 토론토(GTA)를 제외하면 온타리오주에서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대표적인 도시로, 런던한인회를 비롯해 한인 마트, 교회 등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어 유학 및 이민 선호도가 높습니다. 대표적인 즐길 거리와 명소 코벤트 가든 마켓 (Covent Garden Market): 1845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실내외 시장으로, 신선한 지역 농산물과 먹거리를 맛볼 수 있는 랜드마크입니다. 빅토리아 파크 (Victoria Park):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여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어주며, 사계절 내내 다양한 축제와 이벤트가 열립니다. 뮤지엄 런던 (Museum London): 템스강 변에 위치해 뛰어난 전망을 자랑하며, 캐나다 지역 예술가들의 현대 미술 작품과 역사 유물을 전시합니다. 더 팩토리 (The Factory): 캐나다 최대 규모의 실내 어드벤처 파크로 짚라인, 트램펄린, 실내 암벽등반 등을 즐길 수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키치너(Kitchener)============================================== 키치너(Kitchener)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토론토에서 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져 있습니다. 바로 이웃한 도시인 워터루(Waterloo), 캠브리지(Cambridge)와 함께 워터루 지역(Regional Municipality of Waterloo)을 구성하는 핵심 중심 도시입니다. 과거 독일계 이민자들이 대거 정착하면서 원래 도시 이름은 '베를린(Berlin)'이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16년에 영국의 전쟁 영웅 장군의 이름을 따서 현재의 '키치너'로 변경되었습니다. '캐나다의 실리콘밸리' 테크 허브 IT 기술의 중심지: 이웃 도시 워터루와 묶어 '키치너-워터루(K-W)' 지역으로 불리며, 캐나다 최대의 혁신 기술 및 스타트업 허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구글 캐나다 본사: 키치너 다운타운의 유서 깊은 건물을 개조한 대규모 [Google 캐나다 개발 본사]가 이 도시에 자리 잡고 있어 수많은 IT 인재들이 모여듭니다. 교육 및 산업 인프라 명문대 인접: 세계적인 컴퓨터공학 및 이공계 명문인 워터루 대학교(University of Waterloo)와 로리어 대학교(Wilfrid Laurier University)가 바로 옆 워터루에 있어 졸업생들이 키치너의 테크 기업으로 대거 유입됩니다. 코네스토가 컬리지: 키치너에 메인 캠퍼스를 둔 Conestoga College는 취업 전문 실용 학과와 자녀 무상 교육 프로그램으로 한국인 유학생 및 이민자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습니다. 대표적인 축제와 명소 [K-W 옥토버페스트 (Oktoberfest)]: 독일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독일 맥주 축제 중 하나입니다. 매년 10월이면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전통 음악, 음식, 맥주를 즐깁니다. 빅토리아 파크 (Victoria Park): 다운타운 중심에 있는 역사 깊은 시민공원으로, 아름다운 호수와 산책로가 있어 피크닉이나 휴식을 취하기 좋습니다. 더 뮤지엄 (THEMUSEUM): 정형화된 박물관에서 벗어나 예술, 과학, 기술을 융합한 인터랙티브 전시를 선보이는 다운타운의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키치너 마켓 (Kitchener Market): 매주 토요일마다 현지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신선한 야채, 고기, 치즈 등을 판매하는 유서 깊은 파머스 마켓입니다. ================워터루(Waterloo)=============================================== 워터루(Waterloo)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바로 이웃한 키치너(Kitchener)와 접해 있습니다. 키치너, 캠브리지와 함께 워터루 지역(Waterloo Region)을 구성하고 있으며, 지역 내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고 첨단 기술이 발달한 인재 중심의 도시입니다. 세계적인 명문 대학 도시 워터루 대학교 (University of Waterloo): 컴퓨터공학, 엔지니어링, 수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명성을 자랑하는 명문대입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코옵(Co-op, 산학 협력 직업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으로의 높은 취업률을 자랑합니다. 윌프리드 로리어 대학교 (Wilfrid Laurier University): 워터루 대학교 바로 인근에 위치해 있으며, 상경계열(비즈니스) 학과인 라자리디스(Lazaridis) 스쿨과 활기찬 캠퍼스 문화로 명성이 높습니다. 혁신 기술 및 양자 컴퓨팅의 메카 블랙베리(BlackBerry)의 고향: 한때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했던 블랙베리의 전신인 '리서치 인 모션(RIM)'이 설립된 도시로, 워터루가 현재의 거대 테크 허브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양자 밸리 (Quantum Valley): 세계적인 연구 기관인 [페리미터 이론물리학 연구소(Perimeter Institute)]와 양자 컴퓨팅 연구소(IQC)가 있어 차세대 첨단 과학 기술 연구의 글로벌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명소와 라이프스타일 세인트 제이콥스 파머스 마켓 (St. Jacobs Farmers' Market): 워터루 북쪽 경계에 위치한 캐나다 최대 규모의 상설 파머스 마켓입니다. 현지 농산물과 수공예품을 판매하며,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전통 메노나이트(Mennonite) 공동체의 독특한 문화도 엿볼 수 있습니다. 업타운 워터루 (Uptown Waterloo): 도시의 중심부로, 세련된 레스토랑, 로컬 카페, 부티크 상점들이 밀집해 있으며 대학생들로 인해 활기찬 밤문화와 트렌디한 분위기를 자랑합니다. 워터루 파크 (Waterloo Park): '도시의 보석'이라 불리는 111에이커 규모의 대형 공원으로, 내부에 실버 레이크(호수), 야외 산책로, 미니 동물원 등이 있어 시민들의 대표적인 휴식처입니다.
사군자와 아버지 요즘은 흔히 쓰지 않지만, 군자란? 학식이 높고 행실이 어진 사람을 일컫는데, 완전한 인격을 가졌다는 뜻이다. ‘사군자(四君子)’란? ‘네 가지 군자’라는 뜻으로, 네 가지 식물이 지닌 고귀한 품성을 군자에 비유한 말이다. 예로부터 선비들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가리켜 사군자라 칭했으며, 사군자는 동양화의 소재로 동양화가들은 묵화를 치며 군자의 도를 닦았다. 사군자를 이르는 말로서 매난국죽(梅蘭菊竹)을, 우리말 규범표기로는 ‘매란국죽’이다. 사군자를 간단히 설명하면, 매화-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릎 쓰고 제일 먼저 눈 속에서 피어나는 꽃으로, 봄을 상징, 꽃말은 희망, 고결, 인내라고 하며, 또한 선비의 품격과 절개를 대변하는 꽃이라 한다. 난초- 산중에서 비와 이슬을 받아 살면서도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은은한 향기를 멀리멀리 퍼트리는 강인한 성품의 꽃, 여름을 상징, 꽃말은 겸손, 우아함, 고결함이라고 한다. 국화- 늦가을 매서운 서릿발에도 굴하지 않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라는 뜻으로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표현했으며, 다른 꽃들이 피었다가 다 졌어도 홀로 꼿꼿하고 우아하게 피어나는 국화는 가을을 상징, 꽃말은 고귀함, 절개, 장수라고 한다. 대나무- 곧게 뻗은 줄기에 속은 비었으나 꺾일 줄 모르고, 사계절 푸름을 잃지 않으며, 추위 속에서도 굳은 절개를 지키는 대나무는 겨울을 상징, 드물게 꽃이 핀다. 꽃말은 지조, 강인함, 유연성이라고 한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사군자를 좋아하셨다. 강하다는 의미가 중심이 되는 식물들이기 때문일까? 벼루에 먹을 갈아 붓으로 사군자를 치셨고, 평생에 한문과 한글, 해서, 행서, 초서체를 막론하고 붓글씨를 참 많이도 쓰셨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사남매에게 호를 지어 주셨는데, 사군자로부터 힌트를 얻으신 것 같다. 오빠는 큰 아들이라고 강하며 품격을 잃지 말라, 또한 엄동설한을 이겨내는 매화처럼 소리 없이 인내하라는 뜻의 호로 ‘매은(梅隱)’이라고 지어주셨다. 나에게는 난초의 향기를 은은하게 풍기며, 고고하고 강하게 살라는 ‘난은(蘭隱)’ 이라는 호를 지어주셨다. 내 바로 밑의 남동생은 ‘국은(菊隱)’ 이라고 호를 칭하였으니, 매서운 서리 발에도 굴하지 않고, 꼿꼿하게 절개를 지키라고 하셨다. 막내남동생은 ‘죽은(竹隱)’이라고, 대나무처럼 강하면서도 유연하게 푸름의 절개를 지키라고 하셨다. 우리 사남매는 과연 아버지가 지어주신 호처럼 살았는가? 또 살고 있는가? 나의 양심은 무겁기만 하다. 아버지께서는 예전에 우리 사남매를 밥상머리에 앉혀놓고 늘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듣지를 말라고, 꽁보리밥을 소금물에 찍어먹더라도, 굶어죽게 생겼어도, 아니 굶어 죽을지언정 거짓말은 하지마라, 도둑질은 하지마라, 차라리 굶어죽어라 하시며, 정직하게 살아야 하늘과 사람 앞에 떳떳하고 당당하다고 수없이 하시던 말씀이, 평생 가슴 깊숙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나도 나의 세 자녀들에게 아버지에게서 들은 말씀대로 지금도 가르치고 있다. 내 비록 한국에서 먼 캐나다 땅에 살고 있지만, 하루의 삶속에서 항상 아버지와 엄마의 눈동자가 나를 떠나지 않고 있음은, 나의 수호신이라고 믿기 때문일까, 사군자의 하나로 난초처럼 살지는 못할망정, 칠십 중반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가? 아버지의 비장한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똑바로 살아라! 똑바로! 정직, 성실, 검소, 절약이 가훈이었던 우리 집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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