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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각에 한국처럼 권력 혹은 감투를 좋아하는 사회도 드물지 싶다. 내가 속해있는 단체, 회원 전체가 50명이 될까말까 한 작은 단체에서도 대표를 뽑아놓고 이름 대신 B회장님, P총무님하며 그  모임에서 맡은 직책을 성(姓) 뒤에 달아 부른다. 나도 그렇게 안했다가는 큰 벌을 받을 것 같아 무슨 회장님, 무슨 총무님 하며 직함을 부른다. 옛날 조선시대 때 지방의 벼슬아치들을 ‘영감님’이라고 높여 부르던 감투 존경의 유습(遺習)이지 싶다.


 홉스티드(G. Hopstede)라는 사람이 쓴 ‘문화와 조직’이라는 책을 보면 한 문화를 특징짓는 대 여섯 가지 요소를 들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특정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권력과 거리다. 한국은 미국이나 캐나다보다 권력과 거리를 멀게 느끼고 스위스나 스웨덴 보다는 더욱 더 멀게 느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나라일수록 권력과 거리가 가깝다. 


 권력은 일반적으로 감투나 벼슬을 수반한다. 사람들이 직업 뒤에 ‘님’자를 빼놓지 않고 부르는 것은 상대방 직업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하려는 의도도 있겠으나 내 생각에는 우리가 그만큼 벼슬을 밝힌다는 간접적인 증거도 된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감투에 대한 열정이 뜨겁다 보니 간혹 한 단체에 회장이란 위인이 둘이 나타나서 서로 자기가 정통임을 주장하며 죽어라 싸우는 경우도 본다.


 왜 이처럼 감투를 좋아할까? 내 생각으로 그것은 권력으로 통하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인 것 같다. 많은 경우 감투=권력이다. 자원이 빈곤하던 태곳적 사회에서는 권력이 높은 사람 앞에 모든 자원(資源)과 특적이 쌓였다. 오늘날에도 빈곤한 사회는 부유한 사회에 비하여 권력을 가진 자가 물적(物的), 인적(人的) 자원을 더 많이 갖고, 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권력을 추구하고 동경하지 않는가. 권력 그 자체보다도 권력을 따라오는 부(富)와 명예 자원 등의 실리(實利) 때문일 것이다. 다음 경우를 상상해보자. 어느 사회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이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 어느 누구에게나 무제한 으로 무료 공급될 수 있다고 하면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명예와 권력을 얻으려고 발버둥을 칠까?


 조선시대 때는 과거(科擧)에 급제하는 것이 유일한 출세길-. 과거는 명예와 권력과 부(富)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보물단지였다.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양명(立身揚名), 소위 이름을 떨치고 가문을 빛내는 것은 조선 선비들이 공통으로 바라는 절실한 꿈이었다. 권세나 명예는 세상 사람들이 이목(耳目)을 끌기 때문에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불러들이고 자기의 유전가가 영원무궁토록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죽어라 명예를 쫓는 것이다.


 과거에 급제한다는 것은 요새 대학입학시험처럼 2~3년 만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10, 20,  30년을 두고 계속되는 일이었다. 조선 명종 때 경상도 선산에 살았던 노상추라는 무인이 평생 동안 쓴 일기를 보면 그는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14년간 노력, 즉 26살에 시작하여 40이 되어서야 결실을 맺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노상추는 행운아. 평생을 과거에 도전하다가 낙방에 낙방만 거듭하고 결국에 가서는 재산을 탕진, 빚만 지는 꼴이 된 사람들도 많다. 과거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가족의 생계도, 문중의 운영도 모두 뒷전이었다.


 한국처럼 권력과 거리가 먼 사회의 학교 수업은 교사 중심으로 되고 선생은 윗(上) 자리 학생은 아래(下)로 생각된다. 인간 세상에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이를 줄이려는 노력도 적다. 국가도 가정의 연장. 대통령을 국부(國父), 그 부인은 국모(國母)라고 부르는 아첨배들도 있지 않은가. 집에서 가장이 물그릇을 엎지르면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나라의 수장(首長)이 사생아를 숨겨두었다는 사실이 알려져도 이를 꼬집을 사람은 별로 없다.


 권력과 거리가 먼 사회는 서열(序列)을 따지는데 있어서는 가히 병적이다. 이 서열을 어겼을 때는 ‘교양 없는 사람’ 이라는 사회적 질책이 따른다. 한국 같은 데서 연말 파티가 뷔페(Buffet)로 이루어지는 잔치일 때는 음식 앞으로 나가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대학 같은면 학장, 부학장, 과장, 평교수 등 직위 순서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그러나 많은 경우 북미대륙에서는 이런 광경을 보기는 매우 드물다. 내가 23년간 근무하던 캐나다 동부 W대학교에서는 이런 광경은 한 번도 보질 못했다. 학장이고 뭐고 배고픈 놈이 제일 먼저 나간다.


 권력과 거리가 가까운 사회에서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다고 특권이 남들의 눈앞에서 공개적으로 행사되는 경우는 드물다. 예로 2011년 1월, 미국 부통령 바이든(J. Biden)이 법원으로부터 예비 배심원에 선정되었으니 출두하라는 소환장을 받고 법원에 가서 100여 명의 다른 예비 배심원들과 함께 앉아서 차례를 기다렸다는 신문 기사와 함께 난 사진을 보았다. 우리나라 같으면 부통령은 고사하고 장관이나 시장 정도의 권력도 법정에 가서 한시간 넘게 기다린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이렇게 보면 권력과 거리는 참된 민주화 성취를 알려주는 계기(計器)가 되지 않을까? (20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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