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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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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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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6293
9207
2019-12-05
우울한 관계

 
우울한 관계 
 

 

 

하얀 거품 속 
부글거리는 알코올 핑계 삼아
펑, 튕겨 나오는 그의 반응에
13% 기포들 터져 나온다 

 

목젖까지 차오른  
들키고 싶지 않은 속마음
뛰쳐 나온 성급한 문장들이
뇌 신경 까칠한 명령자인
백말질의 노련한 감식자를 노려 보고 있다

 

예정된 각본이었고
거기엔 유효기한은 없다
넘치는 거품을 가라앉히고 
언젠가  푸른 기억 하나쯤  묶어둔다는 것이
우리 사이에  유일한 비상구
마구 흔들었을 때 차오르던 거품처럼

 

상쾌한 기분 옮기기 전  
바닥 드러낸 진심이 서로에게  필요했다
팽창했던 순간들 침전해지고
자극적인 말의 맛들
시나브로 가라 앉을 때까지
물방울처럼  미세한 감정들은   
멸망하거나 번성해 나간다는 것

 

아무리 아니라고 당신이 우긴다 해도 
그 사이 누군가 내안을 빠져 나가고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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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6217
9207
2019-11-27
11월의 들길

 
11월의 들길   
 

 

    

홀로 들길을 간다
옆에서 재잘거리는 소리는
내 삶을 끊임없이 생각나게 할테니
둘이서 가는 길도 좋지만
혼자일 때가 더 가볍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등뼈 굽어질 때
작은 들꽃들의 위로가
처진 어깨를 올려준다.

 

사랑 반 미움 반으로 던져진 
사람의 위로는 그리 오래가지 않아
받은 만큼 상처에 피 흘리는 법.
들키지 않을 신음소리 감추어줄
나를 괴롭히는 것들을
바람이 오래도록 묻어버렸다
편안하고 따뜻했다
온기 사라진 지 오래인
사람의 가슴이 그리 따뜻할 것인가.

 

웃어봐, 주문처럼 새어 나오는
들꽃들의 친근함이
서럽도록 뜨겁게 떨어질 때 
어디엔가 매달려 있을
붉은 열매같은 적막한 사랑 하나

 

들꽃, 바람만이
내가 홀로 길을 나서는 까닭을 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정봉희
76092
9207
2019-11-14
야근일기

 
야근일기
 

 

 

햇빛에 등 돌린 채 
어둠을  기다리는 일이 습관이었다 

 

칠흑 위에 캄캄한 그림자가 눕고
어둠 속으로 길이 지워질 때
비로소 출근을 서두르는 여자
야심한 밤에 집을 나서는 여자 

 

그녀가 자처한 생의  주문은  
올빼미로 숲을 지키는 일  
그것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

 

충혈된  눈알을 굴리며 
밤공기에 데인 것처럼
발가락이 붓고
날개 젖어가는 밤이 있었지만

 

그녀가 들어간  밤은 아직 진행 중

 

모두가 잠든 사이  
숲은 부풀어 
콧노래는 어둠을 쓰다듬고 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정봉희
76008
9207
2019-11-13
막걸리 단상

 
막걸리 단상  
 

 

 

-야가 왜 이리 늦다냐 
채근하시는 아버지 안달에
발 벗은 어머니 담장 너머로
깨금발하는 어스름 저녁

 

밭일 마친 저녁상 위로 뭇국 식어가고
어머니 동구밖 어귀에 눈 달고 계시는데
열살 계집  주전자에 목 축이며 재 넘어 오는 길 
걸음이 비틀거릴 때마다 사발 목 길어진다

 

붉은 담쟁이 넝쿨
담을 넘는 11월 이즈음
주막집은 5리쯤 떨어진 사거리 골목길에 있다
-누구 아부지는 단골잉께 한 사발 더 간다
주모의 싸구려 립스틱이 주전자의 몸을 핥았다

 

계집의 벌건 이마를 바람이 스쳐 지나고
굴뚝에는 저녁 연기가 피어 올랐다
그때 무슨 노래를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주전자의 홀쭉한 뱃살을 눈치 챈 당신이
말없이 막걸리잔을 채운다
지구 반대편에서 
불현듯 아버지를 마신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bh2000
정봉희
75831
9207
2019-10-27
그는 지금 정사 중

 
그는 지금 정사 중
 

 

 

밤새 품었던 붉은 정염
토해내느라 저리 숨가쁘다
단 한번의 그것을 위하여
립스틱과 매니큐어를 바꾸는 노련한 계집처럼
서로의 몸을 비벼 달아 오르는 불의 침대 속
푸른 잎사귀마다 격정의 숨결을 넘나든
이글거리는 계곡은 불타고
                                                                           단물을 밀어올린 농익은 입술 위로                                                                             
꾸물거리며 옷을 벗는 사내는
필사의 체위를 바꾸어가며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푸르스름한 혈액에  피빛 멍이 들었다
하혈 쏟은 몸 안에 붉은 상처의 흔적
어깨 등 온몸이 불 덴 자국이다
구석구석 색정 오른  관능의 자태 앞에
눈은 가늘어지고 입 딱 벌어진 희열이라
목덜미 물어 뜯고 싶게 요염한 사랑놀음
수군거리는 소문을 타고
그를 엿 보러 오는 사람들 많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구경꾼들의 긴 행렬

 

가을산은 지금  정사 중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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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5777
9207
2019-10-16
로라의 가을

 


로라의 가을

 

 
 

뒤태가 다르다
앞선 마음
적막한 몸 
성한 곳이라곤 저 쪼글쪼글한 눈빛


 

텅빈 버스에 올라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손
로라 처럼 부엌을 뛰쳐 나왔지만
혼자라는 생각에
왔던 길 뒤돌아 보며
걷다가 쉬고

 


바람은 내 등뒤를 지나 갔으나 
아무렇게나 놓인 의자에
고양이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잠시 바라보는 강 언덕 
고개를 천천히 들어 하늘을 받쳐들었다 

 

시월, 바람 몹시 부는 날
잎사귀들이 땅에 얼굴을 묻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시간
끝내 풀지 못한 숙제를 안고
시간의 끝자리에 선 듯
오늘은 내가 보인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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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5719
9207
2019-10-16
억새꽃

 
억새꽃
 

 

 

허연 아랫도리를 드러내 놓고
제 속을 털어내는 일이 흉이 될까봐
저리 눕기도 하고
심하게 흔들리기도 한다

 

사람도 억새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는 일 팍팍할 때 눕기도 하고
불붙는 외로움이 가슴을 치는 날이면
우리도 소리내어 울고 싶은 것이다
사람이니까 더 한 것이다

 

몸이 안으로 젖어서
내 안에 슬픔 하나 들이는 일이
서로를  다치는 일이어도
빈 들녘에 홀로 서 있는 것보다
마주 보고 흔들리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흔들리지 않는 것을
우리는 억새라 말하지 못한다


 
이맘쯤, 멀쩡한 사람도
움푹한 상처 하나 앞세우고
네게로 가면
솜뭉치 뽑아 올린 슬픈 몸짓
저 장엄한 행렬 앞에
죄다 눈물 글썽이게 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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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희
75641
9207
2019-10-06
가을 부부

 

가을 부부
 

 

 

 떨어진 거리를 좁히기 위해
낮게 앉았거나
서 있는 두 사람
말없이 서로를 챙겨주는
익숙함에 길들어져 있다

 

거칠고 뭉턱한 손으로
발등에 벌레를 잡아주기도 하고
가녀린  허리가  바람에
쓰러질 때는 두 팔로 안기도 한다

 

금 간 화분에 물이 새면
흙을 채워서 틈새를 막아주고
종일  서있는 아픈 다리를
오래도록 주물러 주며
이따금씩 가려운 이마를  긁어주기도 한다

 

한 사람곁에
또 한 사람
둘이서 지키는 가을은 따뜻하다

 

숲속 집 대문  앞에 서 있는
국화곁에 억새
한 평생 잘 살아온 부부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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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2000
정봉희
75539
9207
2019-09-26
어머니의 릴레이

마늘 한 접에 구십불이면

키운 공력에 비해 속이 쓰리다가도

 

딸 책 한 권 값이라 생각하면

그만 입맛이 돌고 배가 불러오는 거라

 

마늘쫑 한봉다리에 오불이면

뽑은 수공으로 치면 야박하다 싶다가도

 

아들에게 통화 할 전화카드 한 장 값인데 생각하면 

손톱에 배인 독한 마늘 냄새가

수화기를 든 순간 향긋해지는거라

 

내 어머니가 그렇듯

나도 영락없이  어머니를 닮은 어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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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2000
정봉희
75461
9207
2019-09-25
내려놓는 가을

2.25g의 칼슘, 550g의 인산염, 252g의 칼륨

168g의 나트륨, 28g의 마그네슘, 철, 동

체중 중, 산소 65%, 수소18%, 탄소10%, 질소 3%,

가격으로 따지자면 1 달러에 함량 미달.

 

내 몸의 가치 평가서입니다.

 

알사탕 한 개, 연필 한 자루, 도넛 하나의 값

1 달러 루니로 살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커피 한 잔 살 수 없는

욕심으로 포장된 육신이

왜 이리 천근만근 무거운지요.

 

있는 것 다 내려 놓는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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