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용은 올해초 불현듯 그의 60여년 지나온 생의 발자취를 되새김질 해보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들을 회상해보는 그런 시간들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지난 세월을 더듬어 나가던 중, 그 기억의 초점이 1965-67 년 사이 앳된 12-14 세 전후의 나이로 충북지방 어느 시골 소재 중학교 1-2 학년 차에 만났던 한 친구에게 멈춰지게 되었다.
~마치 래디오의 주파수를 맞출 때처럼, 어느 지점에선 소리가 명료해지며 빨간불이 선명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저울추가 무게중심의 근처에서 잠시 흔들리다가 이윽고 가장 중심점에 이르러 고정 되듯이~
그의 이름이 어렴풋이 생각나고, 그와 나누었던 아련한 우정의 편린들이 하나 둘씩 아른거리며 옛 시절의 필름들이 병용의 맘속에, 그리고 그의 눈앞에서 서서히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인지하게도 되었다.
그렇게 옛 동무의 이름과 추억의 조각들이 떠오르니, 그때부터는 갑자기 그의 마음이 통제불능 조급증 환자가 된 듯, 어떻게 하여야 그 친구를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수 있을까? 설렘과 흥분 초조함이 병용의 가슴에 순간 융기되어 그를 거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가며 심하다 싶을 정도의 채찍질을 가해 대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와 함께했던 시절이 하도 먼 옛일이기도 할뿐더러 중학 2년 차에 병용 가족은 서울로 이주하여 거의 그 친구 소식을 접할 수 없었고, 97년도엔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왔기에 반세기가 지난 현재의 시점으로는 그 친구와 쉽게 연결점을 찾는다는 것이 난관(難關)이라면 큰 난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때 병용의 머리 속에 한가지 Idea가 떠올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니 그의 성이 참으로 드문 희성(稀姓)이어서 그런지 딱 한 사람이 뜨긴 하였는데 그 사람이 병용이 찾는 그 친구인지 아니면 동명이인인지 사진도 없고 프로필도 찾기가 어려워 좀 낙심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검색을 하다 마침내 프로필을 찾게 되었고, 그 친구가 병용이 찾는 친구인 것이 확실히 밝혀진 다음 e-mail 연락처도 알게 되었으며, 동시에 병용은 急 메일을 보냄으로 한걸음에 그에게 달려 나아갔다.
병용의 뇌리 속에 남아있던 친구의 모습은 중2시절 교내 웅변대회 나갔던 것과 그 친구가 외쳤던 원고의 내용이 지금껏 그대로, 자신의 기억창고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는 것이었다.
~ 잔잔한 호숫가에 집어 던진 하나의 돌이 온 호수를 메아리 쳐 나가듯, 청천벽력과도 같은 삼팔선 전역에 걸친 육이오 불법 남침을. ~
그 외에도 그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침착성과 의젓함이 있었으며, 용의주도한 면도 느껴졌던 그런 기억들이 떠오르며 지금쯤은 어느 자리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나게도 하는 그런 친구였었다.
그렇게 마치 남북 이산가족의 상봉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놀랍고 반갑기 그지없는, 충격적? 이기까지 한 두 사람의 만남은 몇 차례의 서신교환과, 카톡을 통한 교신과 대화를 수없이 이어갔으며, 거기에 멈추지 않고 급기야 그 친구는 지난 6월초 병용을 찾아 나흘간의 일정으로 토론토를 방문하는 극적(劇的)인 사건을 연출하였다.
그가 병용을 찾아올 때 그의 선물과 더불어 중학시절 음악 선생님으로 두 사람을 가르치셨던 N선생님(女)의 소식과 선생님의 가곡 Solo CD집을 가지고 선생님께서 친필로 쓰신 손 편지와 함께 병용에게 안겨주었다. (선생님은 평소 친구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과 자주 교류를 나누시며, 그 동안 성악가로 많은 활동을 하시고 지금은 명동성당에서 성가대를 지휘하시며, 여러 차례 외국순방 음악회도 다니신 젊음의 열정을 지닌 분으로 병용의 소식을 들으시고 안부와 선물을 보내주시기에 이르렀다.)
병용은 그때 오랫동안 거의 잊다시피한 옛 친구를 오십여 년 세월의 장벽을 뚫고, 인터넷과 통신을 통해 다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인생의 event라 생각하기도 하였는데, 친구가 직접 이곳까지 찾아온다는 사실이 실로 꿈같기도, 또한 새삼 어린 소년시절로 환생이 된듯한 착각이 일기도 하는 삶이 꿈같고, 꿈이 삶 같은 그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 친구도 고백하였지만, 아주 오래 전 첫 여자친구를 만나 연해 하던 그때의 설렘을 뛰어넘을 정도의 떨림과 기다림이 서로의 가슴에서 뜨겁게 뛰고 있던 환희(歡喜)의 시절이기도 하였으며(~그런 것을 정신적인 회춘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의 교차가 극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친구는 병용의 곁으로 날아와, 4박을 하며 하루는 천섬을 돌아보고, 하루는 나이아가라를 함께 거닐며, 반세기 동안 묵혀있던 세월의 나이테를 한 칸, 한 꺼풀씩 압축하여 다 벗겨내는 막중한 과제를, 전혀 힘들이지 않고 완수해내기도 하였다.
두 사람이 함께 여행 중 캐나다의 광활한 High way를 달리며 창 밖으로 전개된 아득한 지평선을, 다른 한쪽으로 펼쳐진 끝모를 수평선을 바라보며, 그러나 그보다도 더 먼 거리 반세기 세월의 두께와 시간의 원거리(遠距離)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중년을 넘어 만년을 향해가는 두 친구는 어느새 사라져간 옛 시절의 보물(추억)들을 건져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친구는 98년도에 뉴욕에서 두 해 정도 유학하던 시절, 나이아가라와 토론토 천섬 등을 잠깐 돌아보았다고 하였지만, 그때는 이번과 같이 아름다운 절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그저 주마간산으로 빠르게 훑고 지나가기에 바빴노라고 말하였다.
나이아가라 나들이엔, 병용의 절친인 H K, Kim이 자신의 차로 출발부터 돌아오는 시간까지 병용과 옛 친구와의 만남이 더욱 값지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직접 운전을 하고, 나들이 코스를 안내하는 등 귀한 우정을 선사하였다. (병용과 그의 옛 친구를 배려해 직장을 하루 쉬고 기꺼이 나서준 병용의 캐나다 20년 지기이며, 병용은 그를 자신의 지음(知音)으로 여김)
4박5일이 꽤 길 것 같았으나, 금새 지나버리고 백여(100)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오랜 시간 적체되었던 서로간의 역사(歷事)를 다 풀어내기엔 한계(限界)를 깨닫고, 미처 다 풀지 못한 사연들은 서로 삶의 자리로 돌아가서 이어 감당하리라는 ‘인생숙제’를 안고 자신의 자리로 숙연히 회귀하였다.
출연: J H, Nam age 22~75
출연: E S, Kyung 12~65, Location: Korea and Canada
출연: 유병용, 12~65
우정출연: H K, Kim ~ 65
(글쓴이 참고: 본 글의 마지막 단원 歷事의 표기는 歷史의 오기가 아닌 표현임을 알려드리며 오랫동안 쌓여있던 친구간의 묻혀있던 사연들을 나타내려, 글쓴이가 조합한 단어인 것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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