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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강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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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캐나다의 칼럼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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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lim
임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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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32
2018-09-15
살다보니

 
살다보니

 

 


 

카르페 디엠,
인생은 그래
그런대로 사는 거지

 

 잘난 사람 없고 못난 사람 없어
그럴 때가 잠깐 있었을 뿐이지.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어
남들이 그렇게 말했을 뿐.

 

 어쩌다가 좋아하는 일도 하고 
가끔은 싫어하는 일도 하게 되더군.

 

살다보니 그렇더군.

 

그래 인생은 그럭저럭 사는 거야

 

온 힘을 다하여 정열을 쏟아 붓기도 했어
흥청망청 게으름으로 세월을 보내기도 했어

 

살다보니 인생 별일도 아니더군.

 

사랑도 뜨겁다 식어지고
명예도 어느덧 흘러가고
부귀도 손 안에 모래알이더라.

 

 노력한다고 잘 사는 것은 아냐
한모금의 물이 나를 달래주고
한줄기의 바람이 나를 미소짓게 해 
그래 사는 것이 바로 이런 거야

 

그냥 그렇게 오늘을 사는 거지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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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lim
임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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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32
2018-05-22
맨발의 여자 ‘제인 에어’(Barefoot Jane in Ayre) (9)

 

(지난 호에 이어)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고 길을 건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그렇게 짧은 만남을 남겨두고 가버렸다. 그래도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 어디에선가 다시 만날 수도 있을까? 소설 속의 제인 에어는 방황하다가 로체스터에게 다시 돌아왔잖은가? ‘제인 에어’가 고아소녀의 사랑과 성공이야기라면 ‘폭풍의 언덕’은 고아소년과 주인집 딸과의 격렬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아름다운 명작이다.


저자 샬롯 브론테의 실제 인생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못하고 어둡고 외롭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동생 에밀리는 30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고 샬롯은 39번째 생일을 앞두고 임신한 채 죽었다. 명작은 고통과 불행 속에서 태어나는가 보다. 


트럭 운전 중에 에어(AYRE)에서 만난 커피숍의 그녀는 나에게 조그만 선물로 빨간색 커피머그만 남기고 사라졌다. 이름도 성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내 기억 속에 슬픈 제인 에어로 남아있을 뿐이다. 


어느 하늘 아래에 가서 살더라도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했다. 만약에 북아메리카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까? 그럴리야 있겠냐먀는 인연은 또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이 있기를 은근히 기대해본다. 


그 후로 해가 바뀌고 2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리고 우연히, 정말 우연히 개리슨 미군기지가 있는 데븐스를 다시 가게 되었다. 매사추세트주의 보스톤 바로 옆이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맨발의 여자 제인 에어, 제인을 만난 에어 타운을. 생각지도 못했던 작은 마을에서 본 한국식품점, 미니슈퍼마켓 그리고 다방이라고 써 놓은 커피숍, 그리고 제인.


세월이 흘렀어도 그 가게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겠지. 물론 제인 에어는 그곳에 있을리가 없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는 강하게 남아있다. 술에 취해 내 침대에 쓰러졌던 그 몸매, 그리고 쇼핑센터에서 화려하게 변신했던 산뜻한 그녀의 모습, 검은색 쫄바지에 드러난 엉덩이 곡선은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한다. 


도저히 그곳에 가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궁금하고 혹시라도 지난 2년 동안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아니면 내가 그녀를 태워준 범인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는 않았을까? 그 외삼촌 아니 대령출신이라던 주인아저씨는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설마 나를 알아보지는 않을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가 앞 길가에 트럭을 세웠다. 슈퍼마켓은 여전히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다방이라고 쓰인 커피숍은 불이 꺼져 있었다. 한참을 지켜보았는데 들어가거나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트럭을 나와 한국 식품점으로 들어갔다. 아줌마가 카운터에 앉아서 한국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커피숍이 오늘 쉬는 날이에요?”


내가 어색함을 누르며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쉬기는. , 문 닫았지.”


“어? 왜 문 닫았어요? 장사가 안 되었나요?”


“이 대령님이 자기 건물인데 장사 안 된다고 닫을리가 있나? 그 놈의 망할년 때문이지.”


“네에!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아, 글쎄. 한 이태 전에 일하던 젊은 여자가 싹 발라가지고 도망갔어. 오갈 데 없는 처지라고 해서 이 대령님이 커피숍에서 일하면서 먹고 살게 해 주었는데 그 여시 같은 년이 금고까지 털어서 하룻밤 새에 귀신처럼 사라졌지 뭐야. 글쎄. 하, 나 참 세상에 별일이 다 있었어. 임신중절로 애까지 낳은 여자를 불쌍하게 여기고 봐 주었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더니. 그년 짐승만도 못해. 세상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니까. 요즘은 한국 사람이 더 무서워.”


“그런 일이 있었군요. 조카라고 안했나요?”


“조카는 무슨 얼어 죽을 조카? 금고를 열고 금반지 패물은 물론 퇴직금 몽땅 훔쳐 달아났다고. 그래서 지금 이 대령님은 집에 없어, 화병이 나서 그 년을 잡겠다고 미국 땅을 여기저기 뒤지고 다니고 있어. 당연히 커피숍도 닫았지.”


하늘이 하얗게 변했다. 세인트 마리님,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다니? 젠장,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나는 순진한 것이 아니라 바보천치다. 트럭으로 돌아온 나는 빨간 커피머그잔을 꺼내 돌바닥에 세게 내동댕이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며 깨졌다. 결코 억울하고 분한 내 마음을 달래지 못했다.


이런 천하에 바보같으니……. 제인 에어! 아메리카 대륙 어느 구석에 숨어 있어도 내가 반드시 잡아내고 말 것이다. 잡히기만 해라!’


그 후로 나는 운전하다가 검은 색 쫄바지를 입은 여자만 보면 반드시 돌아보고 확인하는 습관이 들었다.


아직도 내 망막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엉덩이의 굴곡을 가진 여자, 맨발의 제인 에어를 찾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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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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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32
2018-05-16
맨발의 여자 ‘제인 에어’(Barefoot Jane in Ayre)(8)

 

(지난 호에 이어)
라면이 끓기 시작했다. 라면 한 개 반을 나누어 먹었다. 국물까지 깨끗이 비웠다.


“아, 정말 맛있어요.”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매사추셋 턴파이크에서 스프링 필드로 빠져 나왔다. 그녀가 가까운 쇼핑센터에 들릴 수 있는지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월마트가 있는 플라자 안으로 사라졌다가 한참 만에 돌아왔고, 완전히 바뀐 모습이었다. 


방금 쇼핑한 듯한 깨끗한 티셔츠, 하늘색 운동화, 검은 선글라스까지 끼고 나타나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손에 여행용 손가방과 파우치를 들었고 어제 밤에 들고 왔던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어제 밤에 맨발로 비틀거리며 달려온 제인 에어가 아니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던가! 머리를 올리고 헤어핀 리본으로 고정시킨 그녀는 따사로운 햇볕처럼 화사했다. 몸에 찰싹 달라붙는 검은색 쫄 바지위로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 곡선이 아름다워보였다.


운전하는 내내 나는 어색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묻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함부로 물어보기가 어려웠다. 그녀도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하는 것 같으면서도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 상반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 무엇으로부터 도망가는 여자니까. , 나는 지금 위험에 빠진 여자를 도와주고 있는 거야. 스스로 대견하고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 어디로 갈 거예요?” 


그냥 물어 본 말이지만 바로 후회했다. 도망쳐 나온 여자가 자기가 가는 곳을 가르쳐 줄리가 없다. 다만 갈 곳이나 있었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알바니에 저를 내려주시면 제가 알아서 갈게요.”


“갈 데는 있는 거요? 샌프란시스코에 가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네, 친구가 거기에 있어요. 일단 아무데나 가서 생각해보아야 할거 같아요.”


창밖의 풍경에서 눈을 떼지 않는 그녀는 깊은 고민에 잠겼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알바니 트럭 휴게소에서 내린 그녀가 인사를 했다.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운 사람처럼 나는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할 말도 찾지 못했다. 그녀가 가방에서 무엇을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종이에 급하게 싼 둥그런 모양의 통이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고 길을 건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그렇게 짧은 만남을 남겨두고 가버렸다. 그래도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 어디에선가 다시 만날 수도 있을까? 소설 속의 제인 에어는 방황하다가 로체스터에게 다시 돌아왔잖은가? ‘제인 에어’가 고아소녀의 사랑과 성공이야기라면 ‘폭풍의 언덕’은 고아소년과 주인집 딸과의 격렬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아름다운 명작이다.


저자 샬롯 브론테의 실제 인생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못하고 어둡고 외롭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동생 에밀리는 30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고 샬롯은 39번째 생일을 앞두고 임신한 채 죽었다. 명작은 고통과 불행 속에서 태어나는가 보다. 


트럭 운전 중에 에어(AYRE)에서 만난 커피숍의 그녀는 나에게 조그만 선물로 빨간색 커피머그만 남기고 사라졌다. 이름도 성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내 기억 속에 슬픈 제인 에어로 남아있을 뿐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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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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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32
2018-05-08
맨발의 여자 ‘제인 에어’(Barefoot Jane in Ayre)(7)

 

(지난 호에 이어)


불쌍한 여자, 위험에 빠진 여자. 이 여인이 바로 제인 에어다!


그녀는 횡설수설 되는대로 말을 쏟아 냈다.


“아저씨이, 이 동네는 말이에요. 웃기는 동네에요. 나 웃겨서. 계급이 있어요. 한국 사람들 사이에도 대장이 있고 부하가 있어요. 주인아저씨가 퇴역한 장군이래요. 군에 있을 때 사령관이래나 대령이었대나, 뭐 그래요. 그래서 모두 주인아저씨한테 꼼짝 못해요. 웃기지요?”


침대에 앉히자마자 옆으로 픽 쓰러졌다. 흐드러진 가슴골이 슬쩍 보이고 하얀 맨발까지 그대로 내놓은 종아리와 검은 쫄바지 위로 허벅지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곡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트럭 안에 낯선 여자와 함께 있는 이 순간이 어처구니없고 난처한 상황이면서도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내 침대 안에 쓰러진 제인 에어를 보며 만 가지 생각이 상상되었다.


매사추세츠 주의 군부대 옆 조그만 마을에 한국식품과 다방이 있을 만큼 한국 사람이 많이 살고 있고, 그 동네 커피숍에서 일을 하고 있는 여자가 구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대체 제인 에어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외삼촌이라는 주인아저씨, 대령 출신이라고 했는데, 정말로 여권을 뺏고 일을 시켰을까? 진짜 폭력을 휘두르는 폭력배란 말인가? 정말 일만 시켰을까? 다른 일은 없었을까? 제인 에어가 아직 말을 하지 않았으니 모르는 일이다.


이른 새벽, 아침이 밝아오기 전에 트럭을 출발하였다. 누군가 그녀를 쫒아올 것 같은 불안함이 나를 서두르게 하였다. 제인 에어는 침대에서 꼼짝하지 않은 채 일어나지 않았다. 동네사람 모두 그녀를 감시하고 있다고 했고 잡히면 죽도록 맞는다는 말에 계속 주변을 돌아보고 혹시라도 따라오는 차량이 있는지 눈여겨보았지만 다행스럽게 미행하는 차도 없고 아무런 이상한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두 시간 가량 매사추셋트 주의 턴파이크를 달려 블랜드포드 서비스 플라자에 도착했다. 달리는 트럭 안에서 잠을 자는 것이 어려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주 편한 꿀잠을 잔다. 묘하게 흔들림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해는 이미 중천에 올라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트럭이 정차하자 뒤에 침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제인 에어가 일어났나보다. 일부러 돌아보지도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할 말도 찾지 못했다.


“아저씨, 지금 어디에요?” 머리를 매만지며 그녀가 물었다. 


“블랜드포드 휴게소인데, 이제 안심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녀가 고개를 내밀어 힐끔 밖을 쳐다보았다.


 “세수도 하고 아침도 먹고 가야지요.”


 “여기서 세수해요?”


 “네 휴게소 화장실에서 다 합니다. 세수하고 이 닦고 볼일도 보고…….”


 그녀는 별로 놀라는 표정도 없었다. 눈동자가 퀭하고 눈두덩이 부었고 얼굴은 푸석거림이 역력했다. 그저 숙취 때문에 머리가 아픈 표정이었다.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사먹을 생각 이었지만 라면을 끓이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내가 신는 슬리퍼를 꺼내 주고 우리는 나란히 휴게실 화장실로 향했다.


먼저 트럭으로 돌아온 나는 전기밥솥에 물을 올렸다. 평소에는 밥솥에 라면을 끓이지 않는다. 설거지가 아주 귀찮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에 물을 끓이지만 좀 더 진한 국물 맛을 내기 위해서는 전기밥솥이 더 좋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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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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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32
2018-05-01
맨발의 여자 ‘제인 에어’(Barefoot Jane in Ayre)(6)

 

(지난 호에 이어)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 절박하고 진지했다. 그리고 무릎에 난 상처, 또 배에 칼자국은 또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오늘 밤에 정말로 트럭으로 찾아올까? 만약에 온다면 진짜 태워줘야 하나? 고민했다.


처음엔 커피숍이 외삼촌 가게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부를 때는 그냥 ‘주인아저씨’라고 했다. 또 ‘이 동네에서 이거예요!’하며 엄지를 보여 주었다. 그 뜻은 이 마을 한국 사람들 중 가장 힘이 세거나 엄청난 권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과연 그게 뭘 뜻하는 걸까? 조직폭력배일까?


화물 상차를 마치고 공장 주차장 한쪽에 트럭을 세웠다. 잘 준비를 하였지만 잠들 수가 없었다. 그 아가씨가 과연 올까? 커피숍에서 여기 공장까지 차로 5분도 안 걸리지만 걸어서 온다면 30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 못 자며 뒤척거리다가 12시가 훌쩍 넘었다. 새벽 1시가 넘어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문득 에어AYRE라는 타운 이름이 친근하게 느껴진 이유가 생각났다. 영국의 여류소설가 샬럿 브론테가 1847년 쓴 소설, ‘제인 에어’(Jane Eyre)의 이름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추억 속에 되살아나는 그 줄거리가 아련하다.


제인 에어는 고아가 된 후, 숙모인 리드부인에게 맡겨지고 정신적인 학대를 당한다. 어느 날 잘못한 대가로 제인은 '붉은 방'에 갇히게 되고… 커피숍 아가씨가 외삼촌에게 붙잡혀 있으니 제인 에어와 비슷한 처지가 된다.


제인 에어는 학교에 보내지고 우여곡절을 거쳐 가정교사가 되고 그 주인남자 로체스터에게 청혼을 받고 결혼하게 되지만, 로체스터에게는 이미 정략적으로 결혼한 여자가 있었다. 충격 속에 집을 떠난 제인 에어는 세인트 존을 만나 안정을 되찾고 사랑을 하지만 세인트 존은 어이없게도 그녀의 사촌임이 밝혀진다. 


숙모가 죽고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제인 에어는 다시 로체스터에게 돌아온다. 하지만 불에 타서 폐허가 된 집과 한쪽 눈과 한쪽 팔을 잃어버린 로체스터만이 그녀를 맞이한다. 그리고 제인 에어는 로체스터와 함께 진정한 삶을 꾸려나간다. 세월이 흐른 후, 제인 에어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거 정말 우연처럼 기가 막힌 운명이지 않은가? 제인 에어의 주인공을 매사추세츠 주의 에어에서 만나다니? 그 다방, 커피숍 아가씨를 제인 에어라고 불러야겠다.


똑똑똑, 눈을 떴을 때는 아직 어두운 밤이었고 트럭 안이었다. 제인 에어의 줄거리를 따라 운명과 사랑을 생각하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깜박 잠들었나 보다.


똑똑똑, 다시 트럭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 제인 에어가 서 있었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로체스터를 다시 찾아 온 제인 에어의 실루엣이 아른거렸다. 아니 빨간 티셔츠에 검은 색의 쫄 바지를 입은 커피숍의 그 아가씨가 정말로 찾아왔다. 


깜깜한 밤길을 혼자 걸어서 왔다. 간신히 트럭에 올라서는 그녀는 놀랍게도 맨발이었다. 그녀가 비틀거리며 나에게 기대며 고꾸라졌다. 그녀의 목덜미에서 나는 살 냄새보다 먼저 강하게 풍겨 온 것은 지독한 술 냄새였다. 그녀는 만취해 있었다.


이 밤중에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더구나 맨발이었다. 슬리퍼는 어디에 내동댕이쳤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은색 고리가 달린 검은 가죽 숄더백이 그녀의 어깨에 간신히 매달린 채 흔들거렸다. 한 손으로 꼭 잡고 놓지 않았다.


“그 놈이 이걸 꼭 숨겨 놓고 있어서 찾느라고 시간이 오래…” 


혀가 꼬부라지는 말로 검은 색의 가죽가방을 들어 보였다. 아마도 그녀의 여권을 말하는 것 같았다. 인신매매하는 범죄단들이 하는 일이 바로 여권부터 뺏어서 감춘다고 들었다. 


주절거리는 그녀의 말과 행동은 오늘밤 여기에 오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게 했다. 흐트러진 옷 매무새, 잔뜩 술에 취한 그녀, 아마 주인아저씨와 거창하게 술판을 벌였겠지. 외삼촌 아니 에어에서 캡틴이라는 주인아저씨를 재우기 위해 술을 잔뜩 먹이고 본인도 취했을 것이다. 그리고 방을 뒤져 여권을 찾아서 비틀거리며 여기까지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하여 달려 왔을 것이다. 신발조차 챙길 시간이 없었던지 아니면 정신 없이 달려오다 신데렐라처럼 잃어버렸든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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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5
맨발의 여자 ‘제인 에어’(Barefoot Jane in Ayre)(5)

 

(지난 호에 이어)


“안에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어요.” 


내가 대답하기 전에 그녀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길가에 세워 둔 트럭으로 돌아와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조금 후에 그녀가 커피숍 문을 열고 나왔다. 한손에 커피 컵을 들고 있었다. 주차장을 건너 길가에 세워 놓은 트럭까지 걸어오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몸에 찰싹 달라붙는 검은색 쫄 바지에 붉은 색 셔츠를 입었고 검은 색 페디큐어를 칠한 발가락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슬리퍼를 신었다. 카운터 너머로 보았을 때는 아가씨처럼 생각했는데 제법 농익은 여인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주문하지도 않은 커피를 내게 건네주고 트럭 안에 올라왔다.


“와, 정말 넓다!” 안을 둘러보는 그녀의 첫마디였다.


“아저씨, 나 좀 태워줘요!” 두 번째 말은 조금 의외였다. 장난 섞인 말이거니 생각했는데, 그녀가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나 여기서 도망가야 해요. 아저씨, 나 좀 구해주세요!”


그녀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뭐라고 대답할 수도 없었고 생각을 해볼 틈도 없었다.


“주인아저씨가 나를 꼼짝 못하게 가두고 일만 시켜요. 도와주세요. 아저씨!”


  내가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자 그녀는 쫄 바지를 걷어 올려 무릎을 보여주었다. 멍든 자국이 선명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티셔츠를 훌렁 올리며 하얀 배를 드러내 보였다.


“여기 칼자국도 있어요!”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주인아저씨가 이 마을에서 이거예요.”


그녀가 엄지를 치켜 세워보였다. 짱이라는 말인가? 얼짱? 몸짱? 아니면 대장? 두목? 깡패? 조폭? 지금 이 여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순간적으로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얼핏 인신매매단에 붙잡혀 온 걸까? 의심했다.


“그럼, 경찰에 연락하지 그래요.” 내가 간신히 대답하였다.


“제 신분이 불체라 그렇게 못해요.”


그녀는 수시로 커피숍 쪽을 살펴보았다. 분명 감시당하는 것 같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동네 한국 사람들은 모두 주인아저씨 편이에요. 제가 도망가면 모두 주인아저씨에게 일러바쳐요. 도망갔다가 잡히면 죽도록 얻어맞아요.”


몸에 난 멍든 상처를 보았으니 그녀의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게가 밤 12시에 문 닫으니까 밤중에 몰래 나와서 공장으로 갈게요. 트럭에 태워만 주세요. 어디든 아무도 모르게 도망가게 꼭 좀 도와주세요! 네? 제발 부탁해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그녀는 얼른 트럭에서 내려 커피숍으로 황망히 걸어갔다. 그녀는 내가 그러겠다고 대답하지도 않았는데 그대로 가버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날벼락 같은 사건이지? 세인트 마리님이 도와주실 때까지는 운이 좋았는데 이제 엉뚱한 사건에 괜히 휘말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겁이 덜컥 났다.

 

 

 

 


나는 에어 타운에서 도망치듯 서둘러서 트럭을 운전했다. 에어 타운을 벗어나자마자 겹으로 된 담과 철망이 나타나고 길은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데븐스라는 이름이 있지만 개리슨 미군 부대기지뿐인 마을로 군부대 남쪽으로 큰 건물의 공장 몇 개뿐 주택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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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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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5
맨발의 여자 ‘제인 에어’(Barefoot Jane in Ayre) (4)

 

 

 

(지난 호에 이어)

 
버지니아 주에는 노포크 해군기지, 리피몬드 공군기지, 콴티코 해병대 기지가 몰려 있어서 한국계 미군이 많이 있다. 그리고 샌 안토니어 텍사스, 워터타운 뉴욕주, 캐나다 온타리오주 펨브록까지, 군 기지 주변에서 종종 한국인을 만났다. 


이것은 오랜 시간 동안, 1957년 7월1일부터 현재까지 무려 60년 동안이나 한국에 주둔해온 주한미군들 영향이 크다. 매년 한국에 상주하는 군인병력만 2만 팔천오백 명에서 삼만 칠천 명에 이른다. 최고 4만 5천명에 이른 적도 있다. 


게다가 미군가족과 군무원, 카투사, 한미연합사 한국군까지 합하면 병력수의 세배에 달하는 미국인이 있는 셈이고, 평균 근무햇수가 2년이라 해도 지난 60년 동안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한국에 살다 미국으로 돌아왔고, 자연스럽게 복합문화가정을 이루고 다시 그 복합문화 가정에서 초청되는 가족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군인이므로 군부대나 기지가 있는 가까운 곳에 제일먼저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은 일정한 수순이기도 하였다.


오늘 들린 이 조그만 타운, 이름마저 독특한 에어 AYRE도 그런 타운인 것이다. 매사추세트 주에는 포트 데븐스를 포함하여 3개의 미군부대가 있고, 공군기지가 4개, 더불어서 해안경비대까지 보스톤 주변에 모여 있다.


에어 타운의 포트 데븐스에는 개리슨 기지가 있다. 그래서 미군과 결혼한 복합문화가정과 초청이민 온 그들의 가족, 또는 한국인으로 미군에 입대한 사람들로 구성된 한인 타운이 형성된 소도시로 한국식품점이 있는 이유가 충분히 이해되었다.


“여기서 어디로 가세요?”


“뉴욕주의 알바니 지나서 캐나다로 갑니다. 하지만 픽업 시간이 너무 늦어서 내일 아침에 출발할 겁니다.”


“어디서 자요?”


“어디서 자긴요, 그 회사 주차장에 트럭 세우고 트럭 안에서 자지요.”


“정말로요?”


“그럼요. 트럭 안에 침대도 있는데.”


“정말로? 트럭 안에서 잔단 말이에요?”


  아가씨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메리카 트럭운전사들이 트럭 안에서 자는 줄 정말 모르는 사람은 많이 있다. 나도 트럭 배우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커피숍에는 손님이 간간히 왔다. 아침 출근 시간대였다면 아주 바쁘겠지만 퇴근 시간도 훨씬 지난 지금은 대부분 커피와 도넛을 테이크아웃해서 나가는 손님들이었다. 손님이 약간 뜸해진 시간에 내 코앞에 바짝 다가온 그녀가 조용히 속삭였다.


 “트럭 안을 구경시켜주면 안돼요?” 


 갑작스런 그녀의 질문은 의외였지만 그녀의 호기심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다. 누구든지 대형트럭을 보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이다.


“못할 거야 없지만……. 지저분해서”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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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lim
임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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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5
맨발의 여자 ‘제인 에어’(Barefoot Jane in Ayre) (3)

 

 

(지난 호에 이어)

 
미국에 오면 모두 이방인이다. 원주민을 제외하면 모두가 이민자다. 심지어 같은 한국 사람끼리도 어설프고 낮설다. 반가움과 경계의 사이에서 선 이방인들이다. 한국 식품점 가게 문을 열고 나오다가 파아! 하고 놀라움의 비명을 터뜨렸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내 시선이 멈춘 곳에 ‘다방’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한글 아래에 한문으로까지 쓰여 있는 다방이 유리창 한쪽에 붙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만 웃고 말았다. 


너무나 반가운 단어였다. 대체 다방이라는 간판을 얼마 만에 보는 건가? 미국에 다방이 있으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트럭을 향하던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다방을 향하여 돌아섰다. 이건 뭐, 7080 세대에 읍이나 시골동네에서나 봄직한 광경을 여기 매사추셋주의 조그만 타운에서 보게 되다니? 이건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반드시 다방커피를 맛보고 가야한다. 응답하라 1988! 미국버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커피향이 풍겨왔다. 타운에 흔히 있는 작은 커피숍이나 다름없었다. 던킨, 스타벅스같은 체인점이 아닌 작은 동네 커피숍으로 테이블이 일곱 개 그리고 키친을 마주하고 있는 스탠드 바에 동그란 의자 다섯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마침 저녁시간이라서 손님은 없었다. 카운터 앞에서 메뉴가 적힌 간판을 올려보았다. 메뉴에 커피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라떼도 적혀 있지만 한쪽에 생강차, 홍차, 인삼차 그리고 아메리카노라고 한글로 적혀 있어서 절로 행복한 웃음이 소름 돋듯 흘러나왔다.


“뭘 드릴까요?”


젊은 아가씨, 옷차림으로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젊은 한국아가씨가 상냥하고 애교가 넘치는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메리카노 블랙으로 하나 주세요,” 


한국말로 커피를 주문하려니 묘한 어색함이 흘렀다. 테이블보다 카운터가 주방을 향해 마주 앉는 바를 택해 그 가운데에 자리잡고 앉았다.


“이 타운을 뭐라고 발음합니까?”


커피 머신 앞에 서 있던 그녀가 고개만 돌리며 미소를 보였다.


“에어, 다들 그냥 에어라고 불러요.”


아이어나 에이레보다는 에어라는 발음이 쉽고 친근감 있게 느껴졌다.


“에어에는 한국 사람이 많이 살아요?”


아가씨는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리고 잔에 따르고 수저를 휘휘 저으며 대답했다.


“예, 많이 살아요. 그런데 아저씨는 처음 오신 거 같은데…”


“네, 지나가다가 들린 거예요. 저 길가에 세워둔 트럭 보이죠. 트럭 운전사입니다.”


내가 유리창 너머로 길가에 주차한 트럭을 가리키자 그 아가씨가 한층 높은 밝은 목소리로 감탄했다.


“저렇게 큰 트럭을 운전하세요? 힘들지 않아요?”


“힘이야 들지요.”


“대단하시다. 앞이 저렇게 큰데, 안에 뭐 있어요?”


“별거 다 있지요. 냉장고도 있고 전기밥솥으로 밥도 해먹고. ”


“와, 신기하다. 주로 어디로 가세요?”


“미국 아무데나 가요. 그러니까 북미대륙을 며칠씩 돌아다니지요.”


“오, 정말 재밌겠다. 아저씨는 좋겠다. 나도 가보고 싶은 데가 많아요.”


“어디를 가고 싶은데요?”


“음, 샌프란시스코요, 금문교를 보고 싶어요. 그런데 갈 수가 없어요.”


“가면 되지. 왜 못가요?”


아가씨가 갑자기 주위를 돌아보고는 목소리를 낮추어서 빠르게 속삭였다.


“나는 여기서 아무데도 못가요.”


나도 덩달아서 슬그머니 주위를 살폈다. 주방 안에 그림자가 비쳤다가 사라졌다. 


“여기서 하루 종일 일하고 이 건물 2층에서 먹고 자요.” 


조그만 목소리로 얼른 덧붙였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낌새였지만 주방 쪽에서 나는 소리에 몸을 돌려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건 뭐지?’


서늘한 공기가 커피의 진한 향기 속에서 느껴졌다.  


아가씨는 혼자 주방과 홀을 오가며 혼자 일했다. 손님도 없으니 그렇게 바쁘지 않았다. 가끔 내 앞에 와서 이것저것 물어오기도 했다. 특히 트럭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이렇게 트럭 운전하는 한국 사람이 이런 조그만 타운의 커피숍에 오는 일은 드문 일일 테니까 당연한 일이다.


“아저씨, 어디 가세요?”


“자동차 부품 회사에 픽업하러 갑니다.” 


“아, 그 회사 본 것 같아요, 요 기지 아래에 있는 큰 공장!”


“맞을 겁니다. 그런데 기지가 뭐죠?”


“군 기지 말예요. 미군부대, 여기 사람들은 그냥 기지라고 불러요.”


“아하, 그래요?”


바로 의문이 풀리며 이해가 되는 느낌이 왔다. 왜 이 조그만 마을에 한국식품이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미국이나 캐나다의 어떤 도시나 작은 마을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국기업이 진출해서 현지 공장이 있는 곳은 물론, 한국직원이 연수나 파견을 자주 나오는 원자력 발전소 같은 곳에서도 많이 보았지만, 그중에서도 역시 미군 기지가 있는 도시 주변에 유난히 한국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을 목격하곤 했다. 


버지니아 주에는 노포크 해군기지, 리피몬드 공군기지, 콴티코 해병대 기지가 몰려 있어서 한국계 미군이 많이 있다. 그리고 샌 안토니어 텍사스, 워터타운 뉴욕주, 캐나다 온타리오주 펨브록까지, 군 기지 주변에서 종종 한국인을 만났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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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9
맨발의 여자 ‘제인 에어’(Barefoot Jane in Ayre) (2)

 

(지난 호에 이어)
오랜 경력 속에서 수많은 실수 끝에 깨달은 귀한 경험은 빨리 다른 길을 찾는 것이다. 숲으로 둘러싸인 시골길은 외길이며 점점 좁아진다. 빨리 이 큰 트럭을 돌릴만한 공간을 찾아야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가야 트럭을 돌릴 공간이 나올까 염려되었다. 주위에 산밖에 보이지 않으니 좀처럼 큰 건물이나 공터가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무 것도 없는 숲 사이로 우뚝 선 건물이 보였다. 넓은 주차장은 차가 한 대도 없이 텅 비었다. 기적 같은 일이다. 이런 곳에 교회가 세워져있다니? 할렐루야! 주님은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신자가 아니어도 주님은 은혜를 베푸신다. 


뾰족하게 우뚝 솟아오른 종탑 아래로 눈이 부시게 하얀 목조건물이 성스러운 빛을 반사하고 있다. 차가 한 대도 없는 넓은 주차장을 크게 돌아서 다시 타운 쪽으로 돌아왔다. 세인트 마리님의 은총에 감사하면서......,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내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럴 때면 교회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오늘은 좋은 일이 계속 될 것 같은 기분 좋은 날이다. 회전교차로에 돌아와 다시 제 길로 찾아 나와 Ayre 타운으로 들어섰다.

 

 

 

 

 
역시 길은 점점 좁아졌다. 차선이 하나로 바뀌고 낡은 전봇대가 양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고 오래 되고 낡은 상가와 건물들이 죽 이어진다. 200년 이상 되는 오래 된 타운 이라는 것을 도로와 건물들이 증명해 주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목조건물, 가끔 돌을 쌓아 만든 큰 건물사이로 마차가 달리던 중심가는 이제 차들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비좁은 길이 되었다. 그래서 중심도로는 일방통행 표지판이 붙어 있다. 돌로 지어진 시청건물과 교회 사이를 통과하는 큰 길마저 차선이 하나뿐인 외길이다. 


다운타운을 지나는데도 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인구가 2000명도 안 되는 북미의 소도시들은 대부분이 그렇다. 오래된 중심 타운은 낙후되고 퇴화해서 빈 껍질뿐인 건물들로 공동화현상이 되고 교외를 벗어난 넓은 지역에 새로 개발되어 새 상권의 업타운이 형성 된다. 비어있는 상가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늘어선 중심 타운을 지나 조금 한적한 도로에 나서서 겨우 한숨 돌리는데 상점이 늘어선 2층짜리 건물에서 나의 시선을 끄는 그 무엇이 있었다.


'슈퍼', 바로 슈퍼라고 쓰인 한글이었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영어로만 되어 있는 간판과 사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한글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고 나서야 미니슈퍼 간판 아래 '한국식품'이라고 조그맣게 쓰여 있는 작은 글씨를 발견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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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2
맨발의 여자 ‘제인 에어’(Barefoot Jane in Ayre) (1)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95번을 따라 운전하다가 하버드 유니버시티 간판을 보고 하버드 대학이 보스톤에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아쉬움이 스친다. 30년 전에 알았더라면 하버드 대학에 입학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나는 53피트나 되는 대형 트레일러가 달린 트럭의 운전석에 앉아서 하버드대학 옆을 지나간다.


 

 

 

 


북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는 장거리 트럭 운전사의 가장 큰 매력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시각적 정보와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다양한 아메리카식 융합문화의 경험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중부의 대초원을 가로지르고, 지평선만 보이는 황막한 광야를 끝없이 달리고, 수만 년의 세월이 깎아놓은 붉은 기암괴석 사이를 지나고, 만년설이 언제나 보이는 험준한 바위산 록키를 넘고, 하나의 태양과 하나의 별이 빛나는 선인장 사막을 가로지르고, 파도가 넘실거리는 수평선 너머로 오대호의 큰 호수를 건넌다. 


내셔널지오그라픽에 나오는 사진 같은 비경을 따라 운전하고, 밀림 같은 침엽수림, 불바다 같은 단풍나무 숲으로 달린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천둥번개 속에서도 달리고, 괴물 같은 토네이도에 쫓기기도 한다. 끝없이 다가오는 언덕의 물결을 넘으며, 천지가 온통 흰색뿐인 백야의 폭설 속에서도 오직 핸들에만 의지하여 달린다. 


지금은 초록의 숲이 우거진 한여름, 첩첩 산으로 이어지는 애팔래치안 산맥의 중심부를 지나고 있다. 미국 동부 지역은 1620년 청교도인 백여 명을 태운 매이 플라워호가 케이프 커드에 도착한 역사가 말해 주듯 오래된 도시들이 많다. 


보스톤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조그만 타운 AYRE에서 자동차 부품을 픽업해야 하는데 픽업 시간이 오후 8시다. 좀 늦은 시각이지만 영업실적을 마감해야 하는 분기 말에 흔히 있는 일이다. 화물을 싣는 시간이 2시간 정도라고 예상하면 밤 10시에 상차가 끝나겠지만 하루 14시간 운행규정에 초과되므로 오늘은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다. 그 회사의 야드에서 10시간의 휴식시간을 가진 후 새벽에 출발해야 할 것이다.


하이웨이에서 빠져 나와 작은 하이웨이로 들어서면서 AYRE 의 발음을 고민했다. 에이레, 에이여라고 생각하였다가 캐리비안 해적들이 잭 스패로우 선장에게 아이 아이 캡틴! Aye aye Captain 하고 인사하는 단어와 비슷하므로 아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Ayre 타운으로 향하는 초입에 있는 여섯 개의 길이 교차하는 회전교차로를 만났다. 회전교차로는 대형트럭 운전사에게 골치 아프다. 느린 속도로 빈틈없이 줄을 이어 밀려오는 차량 사이에 끼어드는 것도 어렵고, 가운데 원형 화단도 신경 쓰이고 동시에 좁은 틈이라도 비집고 끼어드는 차량들을 살펴봐야 하는 혼잡스러움 나를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더구나 나가는 길이 비슷하게 디자인되어 있어서 조그맣게 쓰인 길 이름 간판을 빠른 곁눈으로 읽어내야 한다. 빠져 나가야 할 길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역시나 처음 가는 길은 언제나 그렇듯 실수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긴 트럭과 트레일러가 원형 화단에 걸릴 것 같아 조심조심 살펴보다 그만 나가야 할 길을 놓치고 다음 길로 잘못 들어섰다. 하버드 스트리트라고 쓰인 간판이 두 개가 있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하바드로 가는 길조차 이렇게 어렵다. 


젠장, 또 돌려 나오든지 우회도로를 찾아가야겠다. 길을 잘못 들었다고 후회해봐야 정신건강에 도움이 안 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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