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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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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dongwon
고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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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1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구동존이’(求同存異)

 

 

오랜 기간 갇혀 살았던 편의점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벗어나,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기업 'Aryzta Canada'라는 식품기업에 다니면서, 언어는 물론 사고와 관습 등 모든 것이 달라, '뭔가 많이 다름'을 느끼면서, 우연히 접하게 된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구동존이’(求同存異).


오랜 기간 캐나다에서 캐나다인으로 생활해 오고 있음에도, 이곳 사람들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보니, 이전에 미쳐 느끼지 못했던 다름이 와 닿았고, 그 다름이 다소 불편할 때도 있게 된 것이다.


다름 그대로를 인정하고 같음을 찾아 융화하려는 생각이 앞서지 못했기에 불편함이 다가왔을 것이다.


우리네 삶을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구동존이(求同存異)를 바탕으로 할 수 있다면, 만사형통(萬事亨通, Do all things well)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더 나아가 보면, 세계화(Globalization)가 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 Harmonious but different), 서로 화합하되 같아지지는 않다는 뜻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같이 어울리되 자신의 주관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구동존이(求同存異: To seek common ground while holding back differences. To agree to differ), 같음을 먼저 찾고 다름을 인정한다. 즉, 서로의 다름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모든 이와의 관계에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공통분모를 찾아 화합하며 지내라는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성장했으니, 사고, 습관, 행동, 기호, 음식 등을 비롯해 사소한 것조차도 모든 것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존중해 주며, 서로의 공통분모를 찾아 아끼고 사랑하고 존중하며 소중히 하려는 마음을 바탕으로 조화롭게 지내라는 것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노력을 지속 함으로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사고의 영역이 확장될 것이다.


서로 다름을 우선 찾으려는 것과 서로 같음을 먼저 찾으려는 사고와 행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며, 상당히 다른 상반된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무엇을 우선할 것인지 결정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찰나의 순간이면 충분할 것이나, 종이 한 장도 안 되는 사고의 차이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것 같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kodongwon
고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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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9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이 노래를 듣는 내내, 사랑했던, 사랑하고 있는, 사랑하고픈… 참으로 많은 다양한 ‘사랑’을 떠올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 꿈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희미하게 서서히 펼쳐지더니, ‘닿을 것 같지 않게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그 꿈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 그리고 얼마 전에 내 곁자리를 비워 놓고 허망하게 떠난 내 딸 리나(반려묘)까지 떠오르며, 마음을 어지럽힌다. 


 2017년11월11일에 운명을 달리했던 리나는 아직도 보내지 못하고, 벽에는 리나 영정 사진을 걸어 놓고, 테이블에는 내 딸 리나 분골함 앞에 촛불을 켜 놓고, 리나를 기리며 그리고 있다. 괜히 나도 모르게 리나 사료를 샀던 곳, 리나가 다녔던 병원을 가보곤 한다. 


셀폰에 차고 넘치는 리나 사진을 매일 보고 또 보면서, 아직도 리나를 보내지 못 하고, 붙들고 있는 것 같다. 이젠 보내야 하는데… 아직도 내 생활로 돌아 오지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리나야~! 네가 너무 보고 싶구나. 그리고… 아주 가끔 흔들리는 나를 잡아 주고 있는 네가 고맙구나. 한 번만 안아 보면 안 되겠니? 더 사랑하면 안 될까? 보고 싶다. 리나야~! 사랑해~!


 “그대 두 손을 놓쳐서, 난 길을 잃었죠. 허나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게 내 사랑인걸요”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조차도 만족해 할 줄 아는’ 작은 행복을 누리려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과 꿈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는 뜨거운 가슴은 상반된 모습으로 내 안에서 부딪히고 있는 것 같다. 


자기 만족의 경계를 어찌 물리적으로 정할 수 있겠냐 마는, 그 경계의 폭이 너무나도 넓게 느껴져, 가끔은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에 막혀 있고 갇혀 있어, 이뤄지지 않을 것 같기만 한 ‘미리 그려 놓은 미래’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고 있는 나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놓치고 있는 몽매한’ 욕심쟁이인가?


매일의 삶이 무의미하지만은 않을진대… 매일의 삶의 바람에 밀리지 않고, 작은 일상의 의미를 넘어, 큰 꿈을 새겨 넣고 싶은 마음이 쉼 없이 너울너울 굼실거리며 소용돌이 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 한다고, 괜한 헛수고라 생각하진 말아요”


“헛된 희망이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려 한다고, 나의 무모함을 비웃지는 말아요”


“이게 내 사랑인걸요”


 마음속 깊은 곳에 잔잔한 울림을 남겼던 노래 가사의 여운이 아직도 가슴속을 헤집고 다니며 허울거리고 있는 것 같기만 하다.

사랑했던, 사랑하고 있는, 사랑하고픈 이들이여…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내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 한다고
괜한 헛수고라 생각하진 말아요


 
내 마음이
헛된 희망이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려 한다고
나의 무모함을 비웃지는 말아요


 
그대 두 손을 놓쳐서
난 길을 잃었죠
허나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게 내 사랑인걸요


 
내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그대 없이 나 홀로 하려 한다고
나의 이런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
나를 설득하려 말아요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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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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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내 사랑스런 딸(고양이) 리나를 보내며

 

 2017년 11월 11일 토요일 오전 9시 30분경, 내 사랑스런 딸(고양이) 리나(Leena)가 우리가족과의 행복했던 추억만을 품은 채, 가슴아픈 이별을 하게 되었다. Leena는 2011년 여름에 High Kill Center(안락사 시키는 곳)에서 우연히 입양하게 되었다.


Leena는 노부부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으나, 그 노부부가 운명을 달리하여 함께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그 자식들도 나이가 많던 Leena를 받아 들이지 않아 동물보호소로 보내졌으나, 그곳에서도 입양을 원하는 사람이 없어 High Kill Center로 보내졌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와의 인연이 닿았던 것이다.


 Leena와 첫 대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낯선 환경인 우리 집에 처음 도착하자 마자, 영역 동물인 고양이 습성으로 거실 소파 밑으로 숨어들어 반나절 동안 나오지 않고 있었다. 


편의점 영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 그때까지도 소파 밑에 있던 Leena에게 눈을 깜박거리며 고양이식 눈인사를 하면서, 손을 뻗어 쓰다듬어 주고 서서히 빼니, 내 손길을 따라 소파 밑에서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여, 정식으로 첫 인사를 나눈 이후, 지금까지 6년여 동안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감으로 사랑과 행복을 나누며 한 가족으로 지내왔다.


 입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전부터 지니고 있던 지병으로 추정되는데, 눈에 이상이 있어 Winsor에 있는 안과전문의를 찾아 갔고, 간간히 고양이 전문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도 하고, 2015년 1월말에는 병원에 며칠 입원하기도 하였으나, 우리 가족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건강하게 그리고 서로에게 행복을 전하며 잘 지내왔다.


 고양이를 혐오동물로만 인식해왔던 내 편견을 없애준 너무나 고마운 녀석이다. Leena를 처음 마주할 때부터, Leena는 그냥 고양이가 아니었고 내 가족이었다. 그리고 사랑했다. 참 많이 사랑했다. Leena는 나에게 무한한 신뢰와 사랑의 큰 선물을 주었다. 나는 Leena를 통해 또 다른 행복을 받았던 것이다.


 일상의 삶 속에서 늘 불만이 많았던 나에게 의연함을 보여주었고, 위로와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Leena는 지쳐있는 내 곁으로 다가와 단정하고 품위있게 앉아 그윽한 눈으로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했다. 작은 행복에도 만족해하는 Leena로부터 참 행복을 깨닫기 시작했다. 물질적인 행복이 아닌 정신적인 행복의 의미를 더 소중히 해야 함을 느끼게 되었다. 은은한 나눔의 행복을 함께 했다.


 매일 반복되는 지루하고 고된 편의점 운영을 하는 중에도 영업마감시간이 다가오면 Leena를 보고픈 마음에 설레기까지 했다. “Leena야~! 아빠 지금 가고 있어”


 Leena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매일 오후 3시경 가게 문을 잠시 닫고 병문안을 가서, 쓸어주며 Leena가 또다시 버려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우리 Leena가 갑자기 식사를 제대로 못하여 병원에 데려 갔으나, 피검사 결과 췌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에 따른 치료제와 Urgent Care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캔 사료를 복용시켰으나 급기야 곡기를 끊으며 배에 붓기가 있는 것 같았다. 초음파 검사를 받고 나서야 수술도 불가능할 정도로 온몸에 악성종양이 퍼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Leena는 그 고통을 감내하며 평화롭게 품위있게 우리와 작별을 했다.


 Leena가 떠나기 이틀 전, 나는 Leena 옆에서 잠시 잠들었는데, Leena의 ‘그렁그렁’하는 소리에 깼다. 고양이는 기분이 좋을 때 그렁거리는 소리를 낸다. 깨보니 Leena는 그리도 고통스런 와중에 나를 향해 반듯하게 앉아서 쳐다 보며, 그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많이 아팠을텐데도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매번 그랬듯이 나에게 기쁨을 표시했던 것이다. Leena는 “자기를 받아줘서, 그리고 늘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웠고, 그간 행복했다”며 마지막 인사를 했던 것 같다. 내 딸 Leena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렇게 좋은 모습을 보이며 떠났다.


 Leena가 떠난 날, 세상이 허전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Leena의 마지막 의연한 모습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Leena가 실체로 보이지는 않을지언정, Leena는 늘 내 곁에 있을 것이다.”


‘사랑해~! Leena야~!’ 그동안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 네가 있어서 행복했다. 가족들도 Leena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리나~! 
엄마한테 넌 나무야.
그동안 쉼터와 셀터, 바람소리와 온갖 색깔의 선물을 주고 가는 너.
사랑해~! 아주 많이… 하늘 땅만큼.
우리 다시 만나자. 꼭…
고생했다. 우리 아기… 그래도 엄마랑 행복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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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6
봉사자의 본분을 지키며, 소통을 해라.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말고…

 

요새 한인실업인협회가 심상치 않다.   회장으로 봉사하겠다고 하면서 전회장처럼 “소통”을 강조했었다.  참으로 웃기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봉사자가 단체구성원과 소통을 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  

 

그런데 공약했던 것처럼 이제껏 소통을 잘 해왔는가?   소통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뜻이 통하는 동지들과는 소통을 잘 했을 것이라 믿는다.

회원 모두와, 최소한 뜻이 다른 이사들만이라도 소통을 잘 했다면, 지금처럼 실협이 시끄럽지는 않을 것이다.

 

회원들과 충분한 토론을 거친 공감대도 없이, 심지어 회원들에게 보고도 없이, 실협조합통합추진위원회까지 구성해 가며, 통합에 열을 올리더니, ‘조합통합’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듯하니, 이제는  ‘조합위탁경영’이라는 꼼수를 내놓고, 늘 그래왔듯  보나마나 인력동원으로 해결하려 할 것이다.

 

여기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조합원운영이사 혹은 조합원이자 실협이사/실협회원을 겸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협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 실협이 존폐위기까지 내몰릴 수 있는 일을 추진하려 하는 것이다. 

약 260명의 조합원(조합에 대한 실협이 채무보증을 추진하고 있는 사람들 다수 포함)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실협의 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하려고 한다.

(실협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왜 조합을 살려야 하는가?) 

더구나 현 회장은 예전에 실협에서 조합을 분리시켜, 모든 실협회원의 조합원자격을 박탈시켰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심지어 실협을 구한다는 인정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이유아닌 변명을 늘어 놓으며, 회원들의 공유공간인 사무실을 강제점유하고 흉물스러운 철쇠로 출입문을 봉쇄하여 사무실이 출입을 막고 사무원들의 컴퓨터는 물론 사유물을 뒤지기도 했으니, 이유불문하고 법을 위반하는 행위를 벌이기도 했다.  무슨 권리로?

 

어떠한 이유를 대더라도 정당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필자는 실명으로 이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부터 하고 회원들과의 소통을 이어가며 협회를 위해 봉사하라고 실협게시판을 통해 여러 번 권했으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당시 회장 지지자들은 같은 회원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욕설을 포함하여 상스런 표현으로 댓글을 많이도 남겼다.  이들의 아이디는 아직도 기억이 날만큼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복사를 해 놓았고, 내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었다.  물론 비아냥거리며 거절했다.

 

각설하고 다시 논점으로 돌아 가보자.  실협 집행부는 어느 날 슬쩍 실협부대사업체라는 가면을 쓰고 실협에 소속되어 있는 것처럼 가장시켜 놓았다.   그리고는 조합이 위기에 몰리자, 조합운영이사/조합원이자 실협집행부 구성원/실협회원을 겸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협에 채무보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조합에서 “실협에 위탁경영을 맡기고 채무보증을 해달라고 하자”고 결의해 놓고, 다시 실협으로 돌아와서는 마치 조합원이 아니고 다른 사람인 양, 실협집행부이사로 변신하여, “조합에서 위탁경영을 맡기는 대신 채무보증을 해달라고 하니, 채무보증을 해주자”고 건의한다. 

조합운영이사 겸 실협집행부 이사로 있는 사람들 그리고 실협회원이자 조합원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런 얍삽한 행위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이제는 모든 회원이 자동으로 조합원 자격이 되는 것이 아니니, 실협회원은 조합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날, 소수가 모여 실협정관에 조합이 실협의 부대사업체라고 슬쩍 끼워 놓았다고 하더라도, 실협회원입장에서는 조합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조합의 미래가 밝은 것도 아니다.   

실협집행부가 조합을 위탁경영할 능력도 없다. 

실협집행부가 확실한 미래의 청사진조차도 제시하지 못 하고 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말로만 뜬구름 잡는 식으로 잘 될 것이라고 한다.  

스스로 신뢰를 더욱 잃는 행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잘 될 것이 확실하면 260명 조합원들이 개인재산을 먼저 투자해서라도 시도해 보라.

 

모든 실협회원들의 자격을 박탈해 가면서까지 조합을 실협에서 분리시켰다면, 정관상으로만 부대사업체라고 변신시켜 놓았을지언정, 실협과는 무관한 영리단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실협에 재정도움을 청하기에 앞서 조합운영이사 및 조합원 본인들 특히 조합을 실협에서 떼어 나갔던 당사자들이 조합을 회생시켜 보려는 피나는 노력이라도 먼저 해 보아라.  그런 노력을 해보기라도 했는가?

 

조합운영이사과 실협집행부 이사의 위치를 이용하여, 그냥 손만 벌리고 얻어 가려 하지 말고,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노력을 먼저 해 보아라. 

우리 실협회원들이 본인들의 피나는 노력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실협회원과 무관한 조합일지라 하더라도,  한 때는 조합원이기도 했고, 우리 선배님들께서 설립해 놓으셨던 조합이기에, 조합에서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팔을 걷어 붙히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혜를 함께 모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궁금한 것은 조합을 개인에게 위탁경영을 맡기면서 위탁보증금 100만불을 받았다고 했는데, 위탁경영기간이 끝나서, 보증금 100만불을 돌려 줘야 하는데, 조합에 돈이 없으니, 실협에서 채무보증을 해 주면, 금융기관에서 차입하여, 보증금을 줘야 한다고 했다. 

위탁보증금은 나중에 다시 돌려줘야 할 남이 돈이니, 안전한 금융기관에 맡겨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 돈이 없다?   어디에 쓰여졌는지 회원들에게 충분히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완전히 실패했던 실협프로그램으로 실협에 얼마나 손실을 입혔는가?   그리고 액세서리 사업으로 재고로 남아 있는 것은 얼마나 되나?

실협프로그램을 시행한지 몇 년이 되었는가?   그런데 가입회원이 5%도 안 되면, 완전 실패작으로 입밖에 내서는 안 될 정도의 대실패작인 것이다.  아직도 회원들의 몇%만 동조를 해 주면 가능성이 있다는 현실을 외면한 가정조차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왜 실패를 했는지 알기는 할까?    실패에 대한 분석을 해보고, 실패를 인정하고 회원들에게 사과를 한 적은 있는가?   실패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실패는 값진 경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인정하고 분석하여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실패 이유조차도 모를 때는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조차 상실하게 된다.

 

회원들에게 신뢰를 얻지도 못 했고, 능력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합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사과와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자가 진정 용기있는 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봉사자로서 단체구성원에게 자신의 잘못과 과오를 먼저 인정하며 사과할 줄 아는 용기도 없는 사람이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안하기만한 조합에 너무 과감하게 투자하려 하니, 분명 용기는 아닌 바, 무모한 행위로 여겨 그 의도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용기도 없는 사람을 어찌 신뢰할 수 있겠는가?

 

뜻이 맞는 이들과의 편협한 소통을 하지 말고,  뜻이 다른 회원들과의 소통을 먼저 해라.   단체리더는 그리해야 하는 것이다.   나와 뜻이 같은 이들의 의견보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회원들의 의견에 먼저 귀기울이고 경청해라.

 

소통은 “communis"라는 라틴어의 공통이란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개인 혼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없으며, 최소한 뜻이 다른 두 사람 이상이 사실과 생각, 다양한 정보 등을 포함한 하나의 공통 영역을 구축해 나감으로서 의미있는 가치를 지닌다는 의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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