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에서, ‘시6 토론토’의 동인이며 캐나다한인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발한 시작 활동을 하는, 수남 김준태(樹南 金俊泰) 시인이 두 번째 개인시집 ‘가스페 블루스’를 상재(上梓)했다. 그는 캐나다한인문인협회의 발전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해왔으며 시 외의 다른 예술 영역(꽁트, 인터넷, 사진, 미술, 영화 등)에도 관심이 많아, 이들과 시 문학의 연결을 시도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은 열정적인 시인이자 미래의 기수이다.
시집 ‘가스페 블루스’에는 그 동안 써왔던 시 중에 65편의 시가 실려있다. 시집은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토함산, 팔당, 섬진강, 바다 등 한국을 여행하며 쓴 시들, 2부는 스카보로, 댄포스, 몬트리올 등 토론토에서 쓴 시들과 아들, 아내에게 주는 시, 이민 1주년을 맞아 쓴 시, 3부는 자신의 내적 고백과 삶에 대한 사유(思惟)가 담긴 산문시들, 4부는 ‘마을 사람들’처럼 인물 시편 등을 모은 시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사상과 정서의 등가물(等價物)’이라는 저 유명한 T. S. Eliot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시란, 묘사를 통하여 우리 마음에 어떤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안다. 같은 ‘시6?토론토’ 동인으로서 평소 그의 시를 자주 접해왔지만, 새삼 그의 시에 대한 시적 가치와 기대가 깊어진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솔직하고 날카로운 지성으로 분석하고 그 의미를 재발견하여, 단단하고 치밀한 비유와 언어로 표현한 자기성찰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의 시들은, 세상에 대한 방어가 해제된 마음 깊은 곳에 자신을 비추어 볼 때 떠오르는 진솔한 상태를 고백하고 있다. 그 고백은 우리의 마음에 화살처럼 직접 날아와 닿으며, 깊은 공감과 함께 진한 반향과 감동을 일으킨다. 그의 시적 정서는 매우 주관적이며 쓸쓸한 페이소스를 담고 있으나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맑고 건강하다. 우리 삶의 보잘것없음, 덧없음에 대한 연민이나 슬픔을 넘어 그 슬픔조차 담담히 껴안으려는, 달관(達觀)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그의 시편들처럼 자신의 내면을 처절하리만큼 솔직하게 열어 보이고 맑은 눈으로 들여다보며 반추(反芻)하는 성찰(省察)의 시는 별로 본 적이 없다. 그의 성품만큼이나 솔직담백하고 고뇌에 찬 그의 시들은, 그가 대결하고 천착해야 할 그 자체이다. 이 지상의 끝까지를 달려가 보지만 결국에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쓰러지는 쓸쓸함, 결국 삶은 별것이 아니라는 체념과 깨달음, 그러나 그 안에서 그 삶 자체를 껴안고 용서하고 화해하며 죽음과도 함께하고 모든 것을 넘어서는 처절한 아름다움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쓴 시 ‘펌핑 1’을 읽어보자. 조금 길지만, 이 시만큼 시인의 시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시도 없기에 전문을 인용한다.
몸이 가엾어지고 마음에 새싹이 나더군. 주변엔 직선 몇 가닥과 까칠한 곡선 조금이 전부였지만. 그랬네 그 창가에선, 휘장 없는 기억에 마른 연필 끝을 갖다 대면. 꽂아 두고 온 그림자마다 푸시시 몸을 일으키고 나는 또 한 움큼, 시간의 갈기를 거머쥘 수 있었지. 허튼 술잔 같은 거 말고 좁다란 골목길 젖은 연민이나 회한 같은 거 말고. 가끔 꺼내보던 실성한 마음의 틈. 비상과 추락이 함께 쓰러지며 허물던 그 빈방의 육성을 따라. 키모 칵테일을 부었어 침묵으로 무장한 인식의 육질에. 목덜미 긴 오후가 우물쭈물 옷을 벗고 눕기에 아예 속단추를 뜯어버렸지. 돌아가지 말자 다시는 거죽만 남은 울음으로 살지 말자. 보이지 않는 숲속의 바람이 불었어. 온종일 옆구리에선 네모진 펌프가 세차게 울어옛어. 열린 혈관마다 말간 시냇물이 흘러가고 있더군. 끝없이 끝도 없이 쿨-럭 쿨-럭. <‘펌핑 1’ 전문, p.68>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는 시점, 병상에 누워 화학요법 치료제 정맥주사를 맞으며 시인은 죽음 앞에 허약해진 자신의 육체를 돌아본다. 올곧음에 대한 꼿꼿한 마음과 병으로 까칠해진 성격이 전부라고 생각될 때, 체념 속에 움트는 희망을 본다. 마음에 새싹이 돋는 자신을 발견한다. 비상과 추락으로 굴곡진 삶을 돌아보며 그 속의 자기 연민과 회한을 떠나 보내고, 항암치료를 받는 현재로 돌아와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며, 아예 마음의 속 단추를 활짝 열어 죽음을 기꺼이 맞겠다는 열린 마음의 자세를 취한다.
그러면서 이제는 껍질만 남은 울음 같은 삶을 살지 말자고 다짐하자, 숲속의 바람처럼 평온함이 불어오고 혈관으로 시냇물처럼 항암제를 담은 수액이 흘러가는 광경을 담담하게 바라보게 된다. 이렇듯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버랩하며 뛰어넘는 아름다운 관조의 상태, 죽음 앞에선 자신을 바라보는 심경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는 이 시는 그 고백이 너무 아프고 아름답고 절절하여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
그의 또 다른 시 ‘겨울 상수리나무 1’을 읽어보자.
배가 고프니/어두운 정신에 별이 뜬다./울 곳을 찾지 않고/통곡할 수 있는 마음 벌판,/몇 줄의 겨울 시를 쓰다가/생각한다/나, 살아 무엇을 했나/나, 살아 무엇을 하나/신분의 수직 하강 끝에/헐렁해진 의식의 바지 한 벌./줄여 입고 나선 길이/오늘 따라 멀다./참으로 살아는 보았던가/참으로 사랑은 해봤던가/게으른 휘파람./녹색 지붕 다락방 위로 첫눈 내리고/물을 길 없는 안부./빈방 하나가/소리 없이 겨울을 연다. <‘겨울 상수리나무 1’ 전문, p. 53>
우리 이민자들이 외국에 이민 와서 누구나 경험했던 고통과 좌절, 그 속에서 느꼈던 절망과 고독과 페이소스를 이렇게 진솔하게 담아낸 디아스포라의 시는 드물다. ‘배가 고프니/어두운 정신에 별이 뜬다‘는 구절, 힘들고 고통스러운 이민의 현실 앞에서 오히려 번쩍 정신 차리게 된다는 과정을 이렇게 표현한 것도 아름답지만 ‘신분의 수직 하강 끝에/헐렁해진 의식의 바지 한 벌./줄여 입고 나선 길’이라는 구절은 새로운 나라에 와서 고국에서의 WHITE CLASS의 신분을 잃고 낮은 BLUE COLOR 계급의 노동을 감내해야만 하는 우리 이민자의 삶의 현실을 극명하게 표현함으로써, 이민자 우리에게 공감되어 진하게 다가와 아프게 박힌다.
그의 시들은 이렇게 어려운 극한의 삶의 현장에서 고달픈 자신을 돌아다보며 삶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것이 단순한 신세 한탄이나 넋두리, 시니컬한 풍자 또는 자기연민이 아닌 진지한 자기반성이 되어 우리에게 진한 공감을 주는 까닭은,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읊조리면서도 마지막 연에서 보듯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껴안는 넉넉한 마음을 객관적으로 이미지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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