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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수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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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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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seungsoo
조승수
73609
10991
2019-04-17
4월의 강

 
4월의 강

 

 

 

죽은 듯, 자는 듯, 죽으려는 듯
내실에 몸져 누운 어머니처럼
다가가 불러보기 두렵구나.

 

안고 가야 할 것과
떨치고 가야 할 것들이
밤새 뒤척이다 포개어 잠이 든다.

 

성급한 물새 앉을 곳 찾을라
돌배나무 꽃자리를 비워 놓았다.
먼 데서 좋은 소식을 물고 오는지
바람이 길다.

 

세상은 과연 올 것이 오고
갈 곳을 가게 될까.

 

한 구비 돌면 바다이련만
희망이 보이면 더욱 머뭇거리는
저 몸짓은 분명 나라를 닮았다.

 

그 물에, 소년은 낯을 씻는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choseungsoo
조승수
66200
10991
2018-05-31
民 들 레

 
民 들 레

 

 

 

먼 옛날 어느 슬픈 전장(戰場)에서
그녀가 보낸 밀사(密使),

 

“경(卿)은 멀리 이름없는 땅을 찾아 
신분을 감추고 살아가오.   
내 천국의 형기를 마치거든 
꼭 우리 왕국을 다시 찾으리다”

 

여왕의 노란 망토 
창끝에 걸리어 해가 질 때
용감한 병사 하나 말을 달려
아스라히 남쪽 산을 넘었다네.

 

천 년이 넘시울 지난 오늘,
묻히고 덮이어 잊혀진 들녘에 
노란 깃발 하나 검은 표층을 뚫고
民을 불렀던가, 여기저기 색들이 모여 
音이 되고 曲이 되고 嘆이 되고…

 

 밟힌 데서 일어나는 미소는
너의 표정이 아닌 역사의 표정!
꿈꾸던 왕국이 가까왔다는 서조인가
고대하던 그날이 온다는 함성이던가.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choseungsoo
조승수
62263
10991
2017-11-24
노인, 세상의 후미인가 선두인가

 

 성한 물건이 오늘도 수없이 버려진다. 문득문득 눈에 밟히는 것들을 데려가 다시 생명을 주어 키워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내 나이는 되어 보일 듯한 조그맣고 까만 서랍장 -‘저거, 후에 손녀딸 나면 보물상자로 딱 이겠다’ 싶은-, 그리고 흉내 낼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는 옛날 인형과 단순하면서도 되게 멋진 철제장식, 또 앉은뱅이 소파의자의 옆구리에 작은 포켓을 달아 놓은 것도 보인다. 그런 마음이 버려진다는 것이 너무 아깝다. 


누구였을까? 저런 것들을 자식처럼 안고 이 세상을 살고 있었던 마음이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느껴질 때 뭉클한 정이 솟는다. 


 새 물건과 낡은 물건은 갈 곳이 다르다. 마치 일출과 노을은 언뜻 보면 동색이지만 앞으로 오게 될 것의 상이함은 너무도 큰 것처럼, 답은 정해져 있다. 물이 가는 곳(法)이 세상이 가는 곳이다. 


우리도 한때 씩씩하게 출발했던 여울과 폭포시절이 있었고 이제는 잠잠히 흘러가는 깊은 강이 되었다. 거슬러 갈 수는 없다. 그런 속에서도 강물이 바다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목적이나 달성의 의미 이외에도 위안이라는 요소가 숨어 있다. 거기 다다르면 버려진 것들이 결코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 같은 기대와 그리움이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노인들로 채워지는 것을 본다. 나노기술과 가상현실, 3D프린터와 AI, 숨가쁘게 돌아가는 초현실의 뒷전에 세상의 속도로부터 탈락한 평범한 서민들 위로 계절처럼 색이 덮인다. 우울한 색이다. 따라가지 못해 돌려버린 쓸쓸한 발길들이 모여 추억을 이야기하는 그 눈빛 대여섯을 모아봐야 젊은 눈빛 하나를 이기지 못할 만큼 미약하다. 이제 노년에 할 만한 것은 남아있지 않은 것일까? 


 노인문화를 멋지게 일으켜 세우는 일 밖엔 없다. 전통적으로는 노인이 될수록 자기의 것을 지켜야 한다고 해왔다. 재물을 자식에게 다 주어버리지 마라, 늙어서도 현대의 것을 배워라, 유행에 뒤쳐지지 마라. 그래서인지 함께 늙어갈 친구 찾는 일에도 꽤나 타산적이다. 적어도 나와는 동류여야 편하고, 동시에 적어도 나보다는 나아야 자신의 상승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무식하면 안 돼. 가진 것 없어도 안돼. 못나도 안돼. 그러다 보니 결국 혼자 늙어가며 홀로 산책하는 혼노가 많아졌다. 이제 이것을 함노(함께 늙어가는 노인네들)로 바꾸기 위해 나는 감히 이렇게 제언한다.


 노인은 못쓰는 물건처럼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 쓴 물건의 장점과 정을 이야기하는 존재이다. 중심세대에서 밀려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세대가 노년층으로 옮겨진 것이다. 역할이 주어졌다. 아우, 조카, 자식, 손자들 앞에서 포기하거나 밀려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없다. 스스로 움츠리고 닫으려 하지 말고 축적해온 최대의 길이를 사방으로 뻗어보아야 한다. 


 위로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을 자랑스럽게 나누거나 신선하게 고백하는 일이다. 이웃에게 경종과 공감과 변화를 줄 수 있다. 매년 시니어 에세이 집을 기획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사업이 될 것이다. 얼마나 기막히고 놀랄만한 이야기들이 많을 것인가? 글쓰기에 경험이 없던 사람이라도 편집자가 율문을 맡아준다면 훌륭한 우리 삶의 기록이자 지표가 될 수 있다.


 우로는 각기 다른 지식과 기술을 가진 노인들과의 협력이다. 7학년, 8학년 새 교실에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며 친목과 시너지를 그려볼 수 있다.


 좌로는 소외된 노인에 대한 나눔과 끌어 안기다. 순수한 동기와 목적을 가진 자생적 소집단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노화를 재촉하는 가장 큰 독은 고독이라는 사실과, 그것을 늦추는 가장 좋은 약은 사랑과 즐거움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아래로는 밑거름이 되어주는 일이다. 노인들이 고독한 만큼 아이들도 고독한 시대이다. 할머니와 손자, 할아버지와 손녀는 상호 피드백이 극대화하는 인간 최고의 짝꿍이며 인생의 황혼기에 하늘이 내리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그 풋풋한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예절을 가르쳐주고 놀이와 만들기, 생각 키우기를 도와 희망과 추억과 철학을 선사해주는 일은 노인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이며 스스로도 늙지 않는 비결이 된다.


이렇게 우리 이민사회에 인생 고단자들이 기부하는 정신적 재능의 pool을 만들어 네 방향의 출구를 내준다면 참 많은 우리들의 아픔이 낫게 될 것 같다. 아직 쓸만한 인생이 거의 다 와서 쇠퇴하거나 버려지지 않는 대안이다. 아침마다 일어나 그 희망을 본다. 오늘 일출도 8부 능선에 먼저 걸린다.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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