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뜨니 밤새 내리던 비는 일단 멈춘 것 같다. 가이드가 어제에 비하면 오늘은 너무나 쉬운 길이라고 모두를 독려한다. 6시에 출발이라 서둘러 침낭을 챙겨서 더블백에 정리해 짐꾼(Porter)이 지고 가기 편하게 만들었다. 전에는 한 짐꾼 당 50 kg까지 짐을 날랐지만 새로운 규정은25 kg 만 지고 갈 수 있도록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들 각자의 짐도 한 사람당 6 kg이 넘지 않게 꾸려서 지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지 않게 해줘야 한다.
짐꾼들은 이 지역의 잉카 후예들인데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몸체는 작고 마른 편이다. 크고 검은 눈에 속눈썹이 짙고 길어서 산 중턱에서 풀을 뜯고 있는 라마의 눈을 닮았다. 나무껍질처럼 거친 발에 짐을 나르면서 신은 신발이라고는 가죽으로 대충 잘라 만든 샌들일 뿐이다. 우리처럼 골텍스니, 나이키니 신고서도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은 그들이 짐을 지고 산을 타는 걸 보면 힘들다는 불평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다.
나중에 쿠스코 시티투어를 할 때 만난 가이드 말에 의하면 안데스의 짐꾼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허파와 심장이 크고, 적혈구수가 더 많다고 한다. 우리들은 가다가 짐꾼들이 뒤에서 다가오면 왼쪽으로 비켜서 길을 터주고 힘내라고 박수도 쳐주곤 했다.
이제 Inca Trail 3번째 날을 시작해보자. 어제 온 비로 길은 미끄럽고 산 안개로 시야도 넓지 못하지만 공기 하나는 정말 맑아서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3,950m Runquraway를 향해서 발 밑을 잘 보고 올라가는데 비가 또 부슬부슬 오기 시작한다. 우리팀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곳의 날씨는 페루 여자를 닮아서 도대체 알 수가 없다나.
이럴 때를 위해 준비해온 비에 젖지 않는 겉옷, 골텍스 신발, 배낭까지 덮을 수 있는 얇은 비닐로 된 비옷 그리고 무게를 지탱해주고 미끄럼을 방지해주는 폴대, 짙은 안개에 앞을 비춰줄 헤드라이트 그리고 1리터를 담을 수 있는 물병이 꼭 필요하다.
어제만큼은 아니더라도 사실 오늘 트레킹도 쉬운 것은 아니다. 어느 지점에서는 너무 가파른 벼랑이라 두 발, 두 손으로 기어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가이드를 부르며 '일리아스, 오늘 일정 쉽다고 왜 거짓말 했어!!!' 라고 앙앙거리면서도 엉금엉금 기어올라가야지 돌아갈 길도 없는데 별수가 없다.
비에 젖은 우루밤바(Urubamba) 산골짜기는 비집고 지나가야 하는 동굴 같은 터널도 있고, 새까만 깃털이 빛나는 새들과 고산지대의 이끼식물들뿐 아니라 고도에 따라 열대식물, 온대식물까지 다양해서, 붉고 노란 꽃, 선인장에 핀 꽃들까지 다양하고, 안데스 산맥 능선을 타고 걸쳐있는 구름과 모퉁이를 돌다 까마득한 골짜기 아래로 싱싱하고 힘차게 흐르는 우루밤바 강물도 문득문득 만나게 된다. 만일 기차와 버스로 마추피추까지 쉽게 간다면 이런 풍광들을 볼 수는 없겠지.
그룹 중에 젊은 사람들과 속도가 비슷한 사람들은 먼저 사라지고 우리 여자들 몇몇은 비가 그치면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앞서가는 사람이 위험한 곳은 미리미리 알려주면서 Runquragay 3,950m 산길을 비껴가는 도중에 둥근 계단으로 쌓아 올려진 Phuyupatamarca(Town Above the clouds) 유적지에서 풀을 뜯고 있는 새까만 라마 두 마리를 만났다.
페루는 이 검은 라마를 신성하게 여겨서 흠 없는 것을 골라 태양제 때 제물로 바친다고 한다. 로맹가리의 단편소설 제목이 '페루에 가서 죽다'이고, 같은 제목으로 많은 시인들이 시를 썼지만 죽는 것은 한 마리 짐승일 뿐, 많은 시인들 중에 아무도 이 산꼭대기에 와서 죽겠다고 한 사람은 없으니 다행히도 라마여, 그들 대신 아무것도 하지 마라.
여기서 2,650미터 Paqaymayo 캠프까지는 1시간 반의 거리다. 하루 종일 내리는 비에 젖은 신발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털과 선해서 서러워 보이는 눈을 가진 짐승의 기억 때문에 내리막길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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