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06
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5)
1895년과1896년 일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당시의 나이와 상황)
고종 임금 43세(1852-1919)
민비가 시해(1895년10월8일)당한후 친일파들에게 왕궁에 감금. 김홍집 내각은 민비를 폐서인으로 격하시킴.웨베르공사와 언더우드박사 에게 구출요청.(이듬해 이범진이 웨베르공사의 도움으로 러시아 공사관으로 임금과 세자를 구출함)
세자(순종) 21세 (1874-1926)
민비가 시해당한후 임금과 함께 감금상태 (이듬해 러시아공관으로 탈출).
민비(명성황후) 44세 (1851-1895)
국정을 주관, 일본과 대치, 일본낭인들에게 시해당함
義和公18세 (1877-1955)
강제로 출국, 도쿄에 억류, 패기넘치는 제2왕자, 이강공, 의친왕, 일본의 견제를 받았으나 미국 유학한 후에 독립운동
윤치호 30세 (1865-1945)
외부협판, 춘생문사건으로 언더우드집에 피신중 유길준과 함께 어윤중 수원으로 일본에감. 동인사, 미국공사통역관, 상해중서학원, 미국 밴더빌트,에모리대 수학, 기독교정신의 자유 평등 개화사상가 외부협판을 거쳐 학부협판때 민영환 수원으로 대관식 사절단.독립협회,독립신문, YMCA 총무, 송도학원설립, 애국가 작사, 남감리교 한국에 도입, 에딘버러 선교대회 참석. 105인사건의 주모자로 복역, 60년간의영문일기 남김.
윤웅렬 55세 (1840-1911)
무관, 상해 리드선교사집에 피신, 윤치호의 아버지, 1880년 김홍집 수신사를 수행하여 일본 다녀옴, 임오군란때 임금을 보호하여 고종의 신임을 받음. 갑신정변때 군부대신, 유배당함, 관찰사역임. 춘생문사건(국왕구출계획)을 주도하다가 실패하여 상해의 리드선교사 집으로 도피함
삼촌 41세 (1854-1939)
윤영렬, 무관, 강계부사, 포도대장, 윤보선의 조부
이건혁
윤치호의 이모부, 통천댁, 송도의 유지, 남감리교 선교부지 주선, 윤치호 후원자
윤치오(致旿).26세(1869-1949)
윤치호의 사촌동생, 윤일선박사 아버지, 일본 게이오대 졸업, 의화공 후견인, 대한제국 학무국장, 중앙학교 교장역임, 친일노선, 윤치호와는 불편한 관계
김홍집 53세(1842-1896)
총리대신, 1880년 수신사로 일본다녀옴, 개화정책. 갑오개혁 주도, 친일노선에 치우침. 민비시해 관련으로 1896년 군중들에게 타살,
유길준 39세 (1856-1914)
연립내각 서기장, 실권자, 박규수 문하생,1881년 어윤중 수원으로 일본에갔다가 남아서 게이오의숙. 1883년 민영익 수원으로 미국 갔다가 남아서 Governor’s Academy 와 Boston Univ.에서 수학한 최초의 미국유학생, 서유견문기 남김. 개화사상가, 갑오개혁을 주도하고 김홍집연립내각의 실권자로서 친일노선, 민비시해의 배후주모자로 지목되어 일본으로 도피했다가, 1907년 순종황제의 특별사면 받고 귀국한후 흥사단을 조직. 윤치호를 잠재적 경쟁자로 여기며 경계했음
어윤중 47세 (1848-1896)
탁지부 대신, 1881년 일본 시찰단원, 유길준과 윤치호를 수원으로 데리고 감.김홍집과 더불어 친일진영에 속함. 1895년 여름에 면직되었다가 민비시해 사건 직후 복직. 아관파천후에 고향에서 피살됨
민영환 34세(1861-1905)
고종의 외사촌동생, 민겸호의 아들, 각부대신 역임,개화사상가, 강직한성품. 주미공사로 발령받았으나 민비시해로 무산됨. 이듬해 러시아황제 대관식 사절단에서 윤치호와 갈등. 을사조약을 비관 자결, 충정공 추서
민영익 35세(1860-1914)
상해에 체류, 민비의 친정조카, 민씨가문의 중심인물, 별명 황태자, 1883년 미국 보빙사로 미국에 감, 갑신정변때 자상을 당했으나 알렌박사의 치료를 받음. 민비시해사건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껴 상해로 떠난후 귀국하지 않았음. 순종황제 비의 친정오빠.
이노우에 59세(1836-1915)
일본공사, 내부대신 역임 일본귀족, 메이지 유신 주역, 對朝鮮 책략가, 이등박문의 선배
미우라 48세(1847-1926)
일본공사, 민비시해를 주도한 인물, 군인, 일본육사교장 역임. 일본귀족
니오
탁지부의 일본 재정고문관, 의화공의 해외출장비 지출을 거부하다
알렌 박사 (서울) 37세(1858-1932)
Horace Newton Allen의사, 1884년에 한국에온 의사이며 선교사, 민영익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고종임금의 신임을 받음, 제중원 설립, 윤치호 후원자, 1905년 외교관직을 끝으로 귀국했음
알렌 박사(상해) 57세 (1836-1907)
Young John Allen 중서학원 교장, 남감리교 선교부의 상해 중서학원 교장, 윤치호가 평생동안 존경한 선생
본넬 교수
중서학원 선생, 윤치호에게 세례 베품
로호르
알렌 선생 후임으로 온 중서학원 선생
Sientsung 24세 (1871-1905) 마부인, 본명 馬秀珍
윤치호 부인, 2남2녀 아들 영선, 광선, 딸 로라,헬렌
Laura 1세(1894- )
鳳姬, 윤치호의 첫딸, 尹愛芳
E-Fong
Sister, 마부인의 절친한 친구, 韓愛芳
나가미(永見)
중서학원 일본인 동창생, 나가사끼 거주
袁世凱 36세 (1859-1916)
위안스카이, 청국 사령관, 임오군란 명목으로 주둔하며 내정간섭, 중화민국 2대 총통
언더우드 박사 36세 (1859-1916)
Horace Grant Underwood, 1885년에 한국에온 장로교 선교사, 연희전문 설립자, 고종임금과 절친한 관계, 윤치호의 후원자.
언더우드 박사 부인 44세(1851-1921)
Lillias Horton, 언더우드 보다 8세 연상, 의사, 알렌박사와 동역, 윤치호를 돌봐줌.
Greathouse
미국인 장군, 법률고문, 내각의 법률고문, 민비시해 사건 담당 특별검사
씰 공사
주 한 미국 공사, 고종이 구출요청했으나 겁을내며 소극적 이었음. 언더우드와 윤치호의 지탄을 받음.
웨베르 공사 54세(1841-1910)
러시아 초대공사, 1885년에 초대 공사로 부임. 각국공관장들의 협의회장, 고종임금이 가장 의지했던 외교관, 고종임금을 러시아공관에서 1년간 보호했다.
李完用 37세(1858-1927)
학부대신, 미국공사관에 피신중 친미에서 친러로 바꿨다가 친일로 전향한 문신, 을사조약과 한일합방을 주도한 사람. 이윤용의 이복동생. 자존심과 우월감이 유난히 강했던 양반, 국왕 구출계획(춘생문 사건)이 실패하자 미국공사관으로 피신
李允用 41세(1854-1939)
경무사, 미국공사관에 피신중 이완용의 서형, 대원군 서녀와 결혼함, 대원군과는 다른 개화파, 각부 대신과 관찰사를 역임, 이완용과 더불어 친미, 친러, 친일노선을 바꾸며 출세한사람, 일본작위 받음.국왕구출계획(춘생문사건)이 실패하자 미국공사관으로 피신
이범진 43세(1852-1911)
법무대신,경무사 겸직 광평대군파 왕족 . 각부대신역임 고종임금을 측근에서 보호함. 아관파천 이후 정적들을 과격하게 보복했음. 주미공사와 러시아공사 역임. 한일합방후 독립운동을 지원함. 이위종의 아버지. 1911년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자결.
이하영 37세 (1858-1929)
대신, 미국공사관에 피신중 청년시절에 동래에서 일본을 왕래하며 장사하던중 알렌박사를 만나 개인 보좌관이 되어 윤치호와 더불어 미국공사관에서 근무하였음. 자수성가한 문신, 친미 개화파에서 후에 친일노선으로 변신. 1904년에 외부대신이 되고 윤치호를 협판으로 영입하였는데 제1차 한일의정서 체결할때 병을 핑게삼아 윤치호가 대신 서명하도록 했다.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이종찬장군의 할아버지, 일본작위, 국왕구출계획(춘생문사건)이 실패하자 미국공사관으로 피신
현흥택
나이 미상, 군인, 미국공관에 피신중 副領, 친위 제1연대장(경호처장), 임금을 최측근에서 경호하던 장교, 1883년 보빙사절단 특사 민영익의 경호원으로 미국에 감. 민비시해때 윤치호를 의심했으나 춘생문 사건을 계기로 친밀해짐, 국왕 구출계획이 실패하자 미국공관으로 피신함, 종로YMCA 회관 신축부지를 기증함, YMCA총무 현동완의 아버지
안경수 41세(1854-1900)
군부대신, 경무사, 독립협회장 역임, 역모죄로 1900년 사형당함.
민상호 25세 (1870-1933)
미국공사관에 피신중 민비의 총애 받음.미국유학, 미국주재 공사로 발령받은 민영환의 보좌관으로 미국으로 가려던차에 민비시해로 무산됨
김윤식 60세 (1835-1922)
외무 대신, 유길준 과 친일진영. 민비 폐서인 조치에 앞장섬.
박영효 34세 (1861-1939)
일본으로 도피, 철종의 사위, 갑신정변을 주도한 개화파, 갑오개혁으로 사면받고 연립내각의 내부대신 재직중에 역모의 혐의 받고 1895년에 일본으로 도피
서재필 박사31세(1864-1951)
당시 내각 공보 고문관 Dr. Philip Jaison 으로 개명, 윤치호의 친구, 갑신정변이후 미국시민권취득, 의사, 갑오개혁으로 사면받고 귀국해서, 독립신문, 독립협회 주도 하다가 1898년에 다시 미국으로 간후 그곳에서 독립운동을 함.
서광범 36세 (1859-1897)
법무대신, 갑신정변의 가담한 개혁정치가, 미국망명중 갑오개혁으로 사면을 받고 귀국해서 연립내각의 법부대신을 하였으나 김홍집,유길준과 대립하다가 1895년에 주미공사로 감. 1897년 미국에서 병사함. 서재필과 친척.
대원군 75세 (1820-1898)
고종의 아버지, 쇄국 정책, 민비와 갈등, 천주교 탄압, 고종을 폐위시키고 자기의 장손 이준용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음, 민비시해때 일본군에 이용당함
李載冕(이재면)
50세 (1845-1912) 대원군의 장자 , 흥친왕, 고종의 형
李埈鎔(이준용)
25세 (1870-1917) 이재면의 아들, 대원군의 장손,永宣君, 고종의 정치적 라이벌,고종을 폐위시키고 임금이 되려했던 계획이 발각되어 처벌받음.
이재순 44세 (1851-1904)
철종의 조카, 예조,형조 판서 역임, 일본 주재 공사, 충생문 사건 가담.
헨드릭 감독
미국 남감리교 감독, 윤치호의 요청으로 최초로 한국에 온 미국 남 감리교 감독
리드 선교사 46세(1849-1915)
윤치호의 요청으로 1895년 최초로 한국에 온 남감리교 선교사. 개성에 선교부 설치
김학우(1862-1894)
무대신 당시 피살, 이재면의 부정을 처리 하려다가 대원군이 보낸 자객에게 피살(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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